북핵ㆍ미사일 위기 속에 주한미군 사드 배치 갈등으로 경색된 한중 관계를 풀 묘수는 없는 것일까.
정치권과 전문가 일각에서는 노무현정부가 2000년대초 당시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극심했던 한중간 갈등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지난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기지를 경기 평택으로 옮기는 중대한 합의를 했다. 다음 해 한미는 용산기지 이전 협정을 통해 전국에 흩어진 미군기지를 평택과 대구 중심으로 통폐합하기로 하면서 미8군의 평택이전이 본격화됐다.
부산신항 광양항과 함께 3대 국책 항만인 평택항은 한중(韓中) 물류의 핵심 거점이다.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 중 중국 비중이 90%에 가깝다. 평택항에서 배를 타고 가면 바로 닿는 중국 장쑤성 롄윈강은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이어지는 중국 횡단철도의 시작점이다.
미국은 2004년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아시아 주둔 미군을 중국 봉쇄를 위한 첨병 역할로 업그레이드했다. 미군이 버티는 한 중국 함대가 자유롭게 태평양으로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 평택기지는 세계 최대 대중(對中) 미국 전초기지인 셈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나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수시로 비밀리에 중국에 보내 중국 당국자들을 전방위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이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이다.
박 전 비서관은 “그 이후 중국이 평택 기지 이전에 공개 반박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면서 “사드는 그런 소통 과정이 생략된 채 발표됐고 그래서 중국의 반발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중 정상 간 국빈 또는 실무 방문 외에 각종 행사를 계기로 마련된 비공식 접촉도 신뢰와 소통에 큰 영향을 발휘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과 8차례 회담을 했다. 특히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불거진 2004년부터 마지막 재임 연도인 2007년까지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물론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경협으로 훈풍을 타고 있던 남북관계와 더불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반도당사국인 미·중·일·러가 6자회담에 참여하면서 동북아 외교판은 역동적으로 움직였으며, 중국의 대한 정책도 유화적이었다.
또 당시 후진타오 주석은 개혁 개방을 통한 고도성장으로 경제력과 국력이 신장되면서 주변국들의 패권에 대한 견제와 우려가 나타나자 '화평굴기(和平?起: 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를 언급하며, 중국은 대국으로서 국제 사회에 책임감을 가지고 평화적 공존을 지지하는 '삼린(三隣: 세 가지 이웃, 즉, 화목한 이웃, 안정된 이웃, 부유한 이웃)' 정책을 발표했다.
후 주석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한국과의 서해안 경제협력을 더 우선시했고, 특히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한미의 암묵적 동의를 신뢰하며 평택 기지 문제에 눈 감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서 핵심이익은 티벳과 타이완, 남중국해, 동중국해 댜오이다오 센카쿠 문제다.
13년이 흐른 지금은 중국의 경제력·군사력이 미국과 어깨를 견주면서 미중간 패권 경쟁이 더욱 격화됐고, 게다가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고도화돼 북핵 문제는 꼬일 대로 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베이징으로 보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등을 타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중국이 제시한 해법은 일단 북한은 미사일 발사나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을 중지한 다음에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것이다. 이속에서 북미간 평화협정 타결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중관계는 양자간의 문제가 아니라 다자간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반도의 사드 배치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 즉 한미일 지역안보협력체제 강화를 위한 발판이라고 보는 중국의 우려에 우리의 분명한 입장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중 관계는 물론 동북아 외교 지형의 분수령은 오는 18일 열리는 중국의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대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이 국내 현안들을 정리하고 나면, 한반도정세 속 남북한 정책을 재검토하고 한중 관계 개선에 본격 착수할 수도 있다는 관측에서다. 첫 신호탄은 한중통화스와프 만기 연장이 성사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여야 대표 회동에서 “사드 문제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학자적 예측임을 전제로 “연말쯤 한중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핵 해결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과 갈등을 이어가는 게 자국의 이익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중국이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