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칼럼] 또 다른 '공범자'들을 낳을 것인가

2017-09-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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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칼럼

        [사진=김형민 초빙논설위원]


또 다른 '공범자'들을 낳을 것인가

최근 '공범자들'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감독은 MBC에서 해직된 '뉴스타파'의 최승호 PD,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공영방송을 수족처럼 부리기 위해 자행한 일련의 탄압 실상이다. 상영관의 관객만 25만명을 넘었다니 이런 장르의 영화로선 이례적인 관객 호응이고 이른바 '입소문'의 기운으로 상당기간 관객들의 발길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공영방송 MBC에서 시작해 SBS까지 이어진 방송기자 28년의 나의 삶이, '권력의 감시견'으로서 언론 본연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을 이들의 10여년 세월에 비하면 참으로 안온했으나 너무나 초라하고 공허한 것이었다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내용, 전 정권들의 언론통제와 탄압의 실상은 당시 이미 중견기자였던 내게는 새롭다 할 수 없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벌어진 피해 당사자들의 투쟁과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얘기들이 많았는데, 이 대목에서 나 스스로 '방관자적 공범자'는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됐다. 그때그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자위하며 보낸 세월은 좀 더 권력과 각을 세워 무엇이 언론의,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인지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며 한편으로 행동하며 채워왔어야 했던 세월이 아닌지 뼈아픈 반성도 뒤따랐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 정권이 언론장악과 통제를 위해 얼마나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또 그 점령군의 일원이 되어 사장 등 경영진이 된 자들이 권력에 영합하기 위해 얼마나 몰염치한 짓들을 벌였는지 알게 된다면 자연 이들 두 방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에도 공감하게 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두 공영방송 외에 나머지 공중파 방송인 SBS에 가해진 권력의 통제 노력 또한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다만 그것이 민영방송에 줄 수 있는 각종 특혜를 통한 은밀한 거래라는 보다 추잡한 방식으로 행해졌을 뿐이다. 정부가 줄 수 있는 특혜를 당근이라 한다면, 3~5년마다 돌아오는 재허가권은 방송사들에 언제든지 사용가능한 채찍으로 이용되어 왔다.

방송 소유주와 경영진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언론 정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언론인들을 얼마나 핍박할 수 있는지 궁금하면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아르곤'이라는 프로를 보시길 권한다. SBS에서 기자들의 추적고발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토론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추게 된 데에는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문제들을 끊임없이 사회적 현안으로 부각시키는 이들 프로그램이 몹시 부담스러웠을 정권의 압력과 그에 적당히 영합한 소유주의 계산이 배경에 있다. 비슷한 정황들이 영민한 작가에 의해 비교적 정확하게 '아르곤'에 묘사된다.

언론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관계, 이것이 복원돼야 한다. 뉴스타파에서 만든 '공범자들'이란 영화는 피해자인 자신들이 겪어낸 10년의 세월을 중심으로 앞선 두 정권의 언론탄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전 정권들, 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 정권들의 경우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언론, 특히 방송을 제 편으로 묶어두려는, 자신들의 실질적 통제 하에 두려는 참으로 집요한 노력을 펼쳐왔다. 이 점은 기자생활 대부분을 정치부에서 보낸 내 경험만으로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출범 넉 달째인 문재인 정부는 어떠한가?

보수언론, 특히 주류 신문매체들과 불편한 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경영진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공영방송이 이른바 '적폐 청산'의 대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은 MBC 김장겸 사장이나 노조가 파행보도의 핵심인물로 지목한 KBS 고대영 사장 등 경영진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 자체를 참을 수 없는 일로 여기는 것 같다. 정부 일각의 이런 조급한 마음이 여권의 이른바 '공영방송 장악문건' 같은 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지금 파업이 진행 중인 두 공영방송의 문제를 '적폐 청산'의 대상이며 수순으로 생각한다면 문재인 정부 또한 전 정권들의 우행을 되풀이하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문건'의 돌출 문제도 그렇고 공영방송 노조들의 배후에는 여권의 부추김이 있다는 항간의 지적도 이런 우려를 크게 한다. 더구나 최근 민영방송 SBS의 '소유와 경영 분리 선언'이 연말 재허가 심사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다.

우리들이 커다란 실책을 저지르는 핵심 원인은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사고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면 경직된 사고의 틀에 갇혀 '실수'로 끝날 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실책'으로 끝나고 만다. 미 해군사관학교 국가 안보 전략 교수이자 버클리대 유럽학 연구소장인 자카리 쇼어는 이를 '인지함정'이라 규정하고 우리 모두 인지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우선 성급함을 버리고 지혜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보다 유연해 지라고 쇼어 교수는 권고한다.

각기 진통을 겪고 있는 두 공영방송 KBS, MBC와 민영 SBS에 지금 필요한 것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일 것이다. 반면 정부에 필요한 것은 유형, 무형의 권력행사로 단시간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을 견뎌내야 할 인내심이다.

세상 모든 정권의 성공에 필요한 열쇠는 '건강한 견제'이며 '용기 있는 간관'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 설정을 위해, '또 다른 공범자들'을 낳지 않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내놓을 현명한 대안은 과연 무엇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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