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38] 겨울천산(天山:텐산)을 어떻게 넘었나?

2017-09-0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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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20만 대군의 대이동

[사진 = 서진하는 몽골군]

1219년 늦가을, 2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사가 천산 북쪽의 산기슭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수십만 마리의 양떼와 수십만 마리의 소떼, 말떼도 이들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천산 북쪽의 넓은 평원 준가르 분지는 엄청난 수의 병사와 가축들로 가득 채워져 그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진 = 준가르 분지]

그들은 바로 호레즘(Khorezm) 원정에 나선 칭기스칸의 푸른 군대였다. 몽골 중앙부의 초원을 출발한 이들은 이미 알타이산맥을 지나 무려 2천㎞ 이상 이동해 준가르 분지 일대에 이르렀다. 푸른 군대는 알타이 산맥을 넘어 오는 동안 적지 않은 고통을 겪기는 했지만 이 준가르 분지에 접어들면서 이동이 한층 수월해졌다.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전투병 행렬이 들판을 가득 채웠다. 울음소리를 내며 무리 지어 이동하는 양떼들, 등에 식량을 비롯한 온갖 군수품을 실은 채 터벅터벅 걷고 걸어가는 낙타와 소들, 요리사와 보급담당자, 치료사, 통역사, 상인 같은 비(非)전투요원들도 이들 무리 속에 포함돼 있었다.
물론 얼굴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50대의 칭기스칸도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고단한 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동 중에 날이 저물면 그 자리에서 야영을 하고 새벽녘에 북소리가 울리면 또다시 길을 서둘러 서쪽으로 향했다. 자고새면 천산과 넓은 평원만 보면서 몇 날 며칠을 이동해서야 그들은 준가르 분지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 = 천산산맥]

이들이 준가르 분지의 끝이자 천산 중턱에 있는 사이람 호수 근처에 도착했을 때 계절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장정이 시작된 이후 겪은 적지 않은 고초도 이들이 앞으로 맞게 될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천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만년설이 덮인 천산을 그 것도 겨울이 접어드는 시점에 몽골의 푸른 군대는 어떻게 넘을 수 있었을까?

​▶ 만년설을 이고 선 천산 산맥

[사진 = 천산산맥]

천산(텐산:天山)! 중국 북서쪽의 끝 파미르 고원에서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탄과 카자흐스탄까지 2,900㎞에 걸쳐 있는 이 산맥은 이름 그대로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하늘과 맞닿은 채 동서로 길게 누워 있다. 가장 하늘에 가깝게 맞닿은 피크 포베디봉(勝利峰)은 그 높이가 7,439m로 세계 7천m 이상 높은 봉우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또 해발 6.995m의 칸 텡그리봉은 ‘황제의 하늘’이라는 몽골인들에게 익숙한 이름대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하늘을 받치고 있다. 천산의 해발 2,500m 까지는 초원과 가문비나무숲이 아래쪽을 받치고 있고 그 지점을 넘어서면 고산 초원이 펼쳐진다.

3,500m를 넘어서면 초원도 사라지고 생명을 가진 식물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된다. 그리고 그 위로는 만년설이 덮인 설산(雪山)이 펼쳐진다.

▶ 주변을 풍요롭게 만드는 생명 줄
산을 덮은 눈들은 천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은 식수로, 농업용수로 천산 주변사람과 땅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사진 = 카레즈(천산 눈 녹은 물로 만든 수로)]

천산에서 녹아내린 만년설을 땅속으로 연결시킨 카레즈(Kariz)는 중국의 3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다. 남쪽으로 타림분지, 북쪽으로는 준가르 분지를 끼고 있는 이 산맥의 양편은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이어주는 주요한 교통로로 많은 상인들이 東으로, 西로 넘나들던 길이였다. 천산 남쪽의 통로는 천산 남로, 북쪽의 통로는 천산 북로 또는 초원로로 불리는 길로 천산 북로가 동서간의 주요 통로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칭기스칸 시대 이후였다.

▶ 고난의 천산 대장정
준가르 분지를 통과한 칭기스칸의 푸른 군대는 우선 겨울 천산을 넘기 위한 채비를 갖췄다. 말의 다리는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가죽으로 감싸주었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군장의 무게도 가볍게 했다. 여름에도 눈과 얼음이 덮여 있는 험한 길을 겨울을 맞으며 지나야 하는 대장정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해발 4천m이상이 되는 천산 산맥을 넘어 일리지역으로 넘어가는 동안 수많은 병사와 가축들이 눈 속에서 희생됐다. 산중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새우잠을 자며 숱한 밤을 지새우는 동안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지만 이들 푸른 군대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며 강인한 군대로 거듭 나고 있었다.
 

[사진 = 준가르 분지서 본 천산]

이들이 천산을 넘고 일리 계곡을 지나 발하쉬 호수 근처의 평원 지대에 도착했을 때는 막바지 겨울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보다 더 힘들고 더 혹독한 겨울 천산을 무사히 넘은 병사들에게 앞으로 남아있는 장정이나 전투는 별로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푸른 군대가 첫 번째 공격 목표로 하는 오트라르성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농토로 변한 준가르 분지

[사진 = 옥수수 말리는 농민(준가르 분지)]

신강의 주도 우루무치를 벗어나 서쪽으로 차를 달린 지 한 시간 남짓, 서쪽으로 드넓은 평원 지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바로 준가르분지였다. 과거 몽골 땅이었던 곳, 이 지역을 평정하고서야 청나라가 비로소 몽골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때문에 청의 건륭제는 직접 대군을 몰고 멀고 먼 서역 땅까지 원정길에 올라 이 지역을 장악했다. 이후 중국 땅이 돼 버린 준가르 분지는 지금은 그 모습마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초원이 거의 모두 농토로 바뀐 것이다. 가을 색이 완연한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사진 = 준가르 분지 목화밭]


양편에 넓은 경작지를 끼고 서쪽으로 왕복 4차선의 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루무치에서부터 따라오기 시작한 천산은 왼편으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계속 달려가고 있었다. 칭기스칸의 20만 대군과 수십 수백만 마리의 가축은 지금처럼 천산을 왼쪽에 끼고 서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사진 = 천산을 넘는 도로]

푸른 군대는 이곳을 거쳐 천산의 허리를 가로질러 일리 지역으로 들어가는 힘든 장정을 했을 것이다. 칭기스칸의 군대가 정확히 어느 지점을 통과해 일리 지역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포장된 도로를 따라 천산을 넘어 일리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내리막 급경사 길 거북이 운행

[사진 = 사이람 호수]

사이람 호수를 지나면서 내리막길 급경사 도로가 산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급경사의 도로가 산 아래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도로에서 한발만 벗어나면 천 길 낭떠러지! 차량도 조심스럽게 거북이 운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울창한 나무들과 계곡을 끼고 급경사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서 790여 년 전 칭기스칸 군대가 겪은 고초를 가히 짐작할 만 했다. 당시에는 사람이 지난 흔적도 없는 이 근처 지역의 울창한 삼림 지대와 계곡, 혹독한 겨울 추위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전장에서 만난 적보다도 더 무서운 적이었는지 모른다.
 

[사진 = 실크로드의 취재차량]

천산을 넘은 푸른 군대 앞에는 이후 6년간 이슬람 세계를 전화(戰禍)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의 서쪽 관문으로 부와 번영이 넘실대던 오트라르성, 과거 카라 키타이 제국의 영토였다가 호레즘 제국에 편입된 이 성은 그때까지도 이슬람 세계를 붉게 물들일 피의 전쟁을 그들이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칭기스칸은 이처럼 어렵고 힘든 원정을 밀어붙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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