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의 음악이야기] 캐리비안 코리안의 글로컬리티,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선택

2017-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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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

캐리비안 코리안의 글로컬리티,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선택

‘글로컬(glocal)’이라는 말이 있다. 전지구의 일원화된 속성을 일컫는 ‘글로벌(global)’과 그 반대의 한정적인 장소성을 의미하는 ‘로컬(local)’을 합친 조어이다. 정의에 따라 그 개념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8월 3일 발매된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첫 정규음반 'Back When Tigers Smoked'를 글로컬의 쉬운 결론이자 좋은 예로 제시해볼 수 있다.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노래하는 ‘레게(reggae)’는 카리브해 북부 자메이카에서 1960년대 말 발생한 음악으로, 사실 태생 자체가 글로컬 면모를 띤다. 19세기까지 횡행했던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아메리카 대륙 카리브해 연안에 강제로 이주된 수백만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고향인 아프리카 땅의 전통과 감수성을 각기 그들만의 이주문화로 발전시켰고, 이중 영어권에 속한 트리니다드와 자메이카 지역의 이주민이 북미에 정착한 흑인들의 블루스와 재즈를 자신들의 음악인 칼립소(calypso), 멘토(mento), 스카(ska) 등에 첨가·수용하면서 만들어낸 혼종문화가 바로 레게인 것이다.

혼합과 변형을 거치기는 했지만 레게는 이내 자메이카의 상징이 되었고, 고유의 로컬리티를 품은 채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레게 수용은 1979년 이정선의 ‘산 사람’이나 1980년대 윤미선의 ‘골목길’, 나미의 ‘보이네’ 등으로 이어졌다. 레게가 본격적으로 한국음악에 정착한 예는 1993년 김건모의 ‘핑계’로 꼽힌다. ‘핑계’의 대성공 이후 한국음악 속 레게는 그저 리듬을 잠시 차용한 스타일을 넘어 ‘레게 댄스’와 ‘자메이칸 랩’ 장르로 발전하여 유행하였고 거리에 ‘레게 바’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2000년대를 지나며 레게 유행이 수그러지는 듯도 했다. 레게음악은 소수의 마니아 팬을 위한 장르로 전락했고, 레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같은 일회적이고 피상적인 관심을 환기하는 데 그쳤다. 하나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도 꾸준히 코리안 레게를 개척하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에 의해 레게는 다시금 2000년대 중반 대거 수면 위로 오르게 되었다.

한국산 레게의 로컬리제이션 역사를 잇게 된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적극적인 자세와 발전적인 모델로 캐리비안 코리안만의 글로컬리티를 획득한다. 글로컬리티의 기반은 안정적인 연주와 장르 원천의 충실한 재현으로부터 마련된다. 밴드 구성원 각 사람이 베테랑 밴드 윈디시티, 킹스턴 루디스카,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으로 시작부터 레게 슈퍼그룹으로 불리던 이들이다. 작년에 발매한 'Heaven is Here/Song for Rico'의 경우 라이브클럽에서 원 테이크로 연주한 실황 녹취가 고스란히 싱글음원이 될 만큼 연주로는 이미 완성형에 달해 있었기에 오롯이 음악적 방향만 생각하면 됐다. 실제로 블루지한 기타와 통통거리는 퍼커션 등 아프리칸 레게사운드의 기본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악기만이 아니라 그간 한국 레게음악에서 백업 악기나 보조적인 조미료 역할에 머물러 있던 베이스, 브라스 파트의 연주에도 대등한 지위와 돋보이는 파트를 부여해 듣는 재미를 전반적으로 높였다. 레게 전문 엔지니어 우치다 나오유키(内田直行)가 매만진 사운드에서는 고전 레게 특유의 거친 아날로그 질감과 공간감이 매끄러운 디지털 레코딩 틈 사이로 교묘히 느껴지고, 인트로부터 덥 버전까지 충실히 완성한 ‘조랑말을 타고’에서는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특유의 독한 솔로가 어지러운 매력으로 서사에 입체감을 더한다.

노래 제목과 가사 곳곳에 스민 토속적인 소재와 단어, 소리꾼 김율희의 보컬 등은 노골적인 로컬리티의 차용이다. ‘청국장 레게’를 표방한 윈디시티 등 앞선 예도 있지만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본 앨범은 민화작가 김혜경이 그린 민화풍의 앨범 커버나 전문 소리꾼 김율희의 구수하면서도 비장한 가창을 앞세워 그 의욕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시한다. 앨범의 제목부터 'Back When Tigers Smoked'가 아니었던가.

글로벌과 로컬이 만나는 지점은 노래 주체가 견지하는 태도와 관련이 깊다. 레게는 칼립소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모사한 멘토로부터 출발한 음악이다. 스카와 록스테디(rock-steady) 형태를 거치며 리듬이 강조되기도 했지만, 자메이카 민중이 당한 정치적 탄압에서나 정치적 독립 이후 열악한 빈민 환경에서나, 과거 식민지였던 뿌리에 대한 반추를 바탕으로 지상낙원과도 같은 현재 삶의 긍정과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메시지로 녹여냈던 장르이다. 이 같은 레게의 전통은 본 작에서 비단 세대 보편의 평화적 메시지만을 전달하거나 삶의 흥만을 말하는 방식이 아닌 농사와 같은 로컬 특유의 고전적인 가치를 역설(‘향농가·向農歌(Farmer’s Funk)‘)하거나 관용어구를 인용해 역사의 교훈을 반추하는 방식(’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때 글로벌 가치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 반대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한 적이 있다. 글로벌 레게의 외피를 입고 기실 한국의 기호들을 그에 대한 발전상으로 늘어놓는 이들의 음악이 해외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올라오고 세계적인 레게 축제에 한국 팀으로 최초 초청을 받는 현실을 보면 그 말이 괜한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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