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율이 높아 애물단지였던 실손보험이지만, 연간 수십조에 달하는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어 보험사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실손보험료 인하에 보험업계 ‘발끈’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에 따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민간보험사들이 1조5244억원의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토대로 실손보험료 인하 유도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반사이익은커녕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높은 탓에 연간 1조600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실손보험료 인하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손보험 적자액이 지난해 1조6000억원에 이르렀고 실손보험 손해율도 131%가 넘는다는 게 보험업계의 해명이다.
특히 정부의 '반사이익' 논리에 대해 보험업계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제시한 통계는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6년 발표했던 것으로, 실제 보험사가 걷고 쓴 돈을 근거로 산정한 수치가 아니라 보험개발원이 만든 '참조 위험률'을 부적절하게 인용해 산출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에 보험료 인하 불가피
하지만 실손보험료 인하에 대한 보험업계의 반발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건강보험의 보장 항목을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로 인해 실손보험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기존 비급여 치료를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 치료로 대거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 확대 방침을 내놨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으로 대부분의 비급여 치료를 보장받을 수 있어 굳이 매년 수십만 원의 보험료를 내면서까지 실손보험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게 소비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비급여 부분까지 보장 영역을 넓힌다고 해도 여전히 개인이 부담해야 할 부분이 남는 만큼 실손보험은 필요하다는 게 보험업계 주장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정부의 실손보험 인하 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도수치료 본인부담률이 50% 정도로 결정되면 이 부담금에서 일부를 실손보험이 보장하기 때문에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보험을 해약할 필요가 없지만, 보험사들로서는 충분히 보험료 인하 여건이 생기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확대로 실손보험이 보장해야 할 부분이 줄어 정부가 요구하는 실손보험료 인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실손보험 상품과 보험료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료 인하 압박 … 금감원 감리 착수
앞으로 정부의 보험료 인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도 보험료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실손 보험료 책정에 대한 감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는 실손 보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이를 분석하는 것"이라면서 "비급여 진료에 세금과 건강보험료가 포함되기 때문에 실손 보험료는 인하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의 감리는 보험사들이 실손 보험의 손해율 상승을 이유로 보험료를 올린 것과 관련해 보험료 산출 과정과 세부 내역을 따져보는 것이다. 실손 보험료는 2015년 금융당국의 보험 자율화 조치 이후 올해까지 3년 연속 인상됐다.
평균 인상률이 20% 내외로 커 보험 가입자들이 느끼는 보험료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감리 결과 보험료 인상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 보험사들은 당장 보험료 인하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실손보험 인하 압박이 상당히 거세기 때문에 더 이상 불만도 토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자본 투자를 위해 수십조원에 달하는 실손보험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보험사들로서는 진땀만 흘리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