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마지막 정상을 앞두고 한 숨을 돌리는데 구름이 나와 같은 높이에 있더라. 운 좋게 날씨가 좋아 제주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그 순간 눈물이 조금 났다. 상반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풍경이 예뻐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고진영은 그 짧은 순간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고. ‘이렇게 큰 세계에 내가 혼자 앉아 있는데, 내가 지금 죽으면 누가 날 알까. 사람은 정말 이름을 알려야 되겠구나.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힘들구나.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겠구나.’
고진영은 13일 막을 내린 제주 오라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를 일주일 앞두고 제주도에 먼저 왔다. 투어 데뷔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것.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지만, 올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힐링’을 위한 장소로 정한 곳이다.
한라산의 기운이 고진영에게 우승의 행운을 선물한 걸까. 고진영은 하반기 첫 대회에서 시즌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라운드에서는 8개 홀 연속 버디로 KLPGA 투어 최다 연속 버디 타이기록을 세우는 등 짜릿한 역전 우승으로 투어 통산 8승을 채웠다.
고진영은 이번 우승과 함께 그동안의 마음고생도 털어냈다. 그는 “내 스윙을 믿고 편안하게 플레이를 했다. 언제든 버디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며 달라진 마음가짐도 전했다.
그리고 고진영은 또 한 번 눈물을 보였다. 투병 중인 할아버지께 바치는 우승 눈물이었다. 고진영은 “내가 큰손녀라서 할아버지께서 유독 예뻐하셨다. 통산 7승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기억을 하시는 게 괜찮으셨는데, 올해 초에는 나도 기억을 못하시더라”며 울먹이더니, “그런데 골프 채널을 보시는데, 언뜻 큰손녀가 골프 하는 걸 알고 있으신 듯 했다. 손녀가 나온다고 틀어놓고 보고 계시는 거였다”고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번 대회에서 두 번의 눈물로 다시 일어선 고진영은 하반기 가장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올해 김지현(26), 이정은(21), 김해림(28)으로 이어지는 3강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존재다. 고진영은 “지금까지 굉장히 힘들 게 공을 쳤던 것 같다”며 “몸통 스윙 변화를 통해 이젠 공격적으로 스윙을 할 수 있게 됐다. 통산 9승으로 가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