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콘서트10] 카카오뱅크와 은행원의 죽음

2017-07-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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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와 은행원의 죽음

 제목 중 ‘은행원의 죽음’ 은 아서 밀러가 1949년에 쓴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에서 차용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희곡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 윌리 로만은 이미 60세가 넘은, 시대에 뒤떨어진 세일즈맨으로 아직도 보험이나 월부 부금에 쫓기고 있으면서도 화려한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시대의 패배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전직을 희망하였다가 오히려 해고를 당하고 아들에게 걸었던 꿈도 깨어진 후, 그는 가족을 위하여 보험금을 타게 하려고 자동차를 폭주시켜 죽고 만다.”
세일즈 자체는 시대를 넘어 존재하지만 세일즈 방식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욕망도 변하고 상품도 변하게 된다.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품과 세일즈맨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상품과 판매방식이 차지하게 된다.
두 번째 인터넷 전문은행인 한국 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이 지난 27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지난 4월에 문을 연 케이뱅크와 함께 본격적인 인터넷 은행 시대를 열었다. 카카오뱅크는 문을 열자마자 신기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IT 전문 일간지 전자신문은 1면 톱기사로 카카오뱅크의 돌풍을 다뤘고, 모든 주요 매체들이 카카오뱅크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32시간 만에 벌써 47만 계좌를 오픈했다. 이미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가 100일 만에 40만명을 모은 것을 생각하면 비교도 안 된다. 예·적금액 1350억원, 대출액은 920억원으로 여·수신액 모두 케이뱅크보다 빠르다.
카카오뱅크의 돌풍 원인은 당연히 국민 메신저가 된 카카오 톡에 있다. 스마트폰이 있는 사람들의 모바일 화면에는 대부분 카카오 톡이 깔려 있다. 이미 잠재적으로 모든 국민은 카카오뱅크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은행 계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카카오 톡이 국민 메신저가 되면서 카카오는 네트워크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가 만든 서비스 중에 가장 의미가 큰 서비스다. 카카오뱅크의 등장으로 기존 시중은행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시중은행에서 일하던 은행원들의 미래 또한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이제 사람들은 은행에 갈 필요가 없다. 앱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설치한 다음 비대면 실명 확인을 하면 계좌를 열 수 있다. 소요시간이 평균 7분 이내다. 시내 사거리에 있는 은행에 가서 청원경찰의 안내에 따라 대기표를 뽑고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 인터넷 은행은 24시간 365일 계좌 개설도 가능하고 예금·대출 업무도 가능하다.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많은 은행원들이 필요 없게 됐다. 경제학, 경영학, 회계학 등을 전공한 유능한 은행원들이 처리하고 판단하던 일이 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했고 그 속도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은행 카운터에 앉아 대출 희망자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던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존 시중 은행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오프라인 은행 유지를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대출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고 수수료도 비쌀 수밖에 없다. 보관해야 될 서류도 많아 물리적 공간도 계속 확장해야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수수료는 없거나 최소화하고 대출 금리 역시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물리적 은행을 없애고 가상공간에 은행을 만들어 영업하는 것이 좋겠다는 발상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온 세상이 정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종이돈의 사용은 보조적으로만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화폐 거래는 가상공간에서 데이터 송수신으로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처럼 화폐 거래 역시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면서 은행에서 필요한 사람들은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다. 수학, 컴퓨터 사이언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화폐가 데이터로 전환되고 정보 네트워크가 무한대로 연결되면서 은행은 더 이상 화폐를 취급하는 곳이 아니다. 은행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플랫폼이 되고 은행의 경쟁력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더 좋은 정보, 더 좋은 대출 상품을 제공할 때 가능해진다.
아직은 시중 은행의 영향력이 더 크고 시중 은행들 역시 생존하기 위해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시중 은행과 인터넷 은행 간의 경쟁은 계속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 승자가 시중 은행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느긋하게 대출 상담을 해주는 아날로그 시대의 은행원이 아니라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대출 서비스와 저렴한 금리다. 카카오뱅크의 돌풍을 통해서 이미 확인되고 있다. 변화가 시작되면 과거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시대는 늘 이렇게 발전해왔다. 상품과 시장은 계속 존재하지만 유통 방식은 어느 순간 급속한 변화를 겪는다. 기존의 직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태풍의 눈에서 벗어나면 태풍이 몰아치는 것이 보인다. 

[사진=김홍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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