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기자 = 가격은 시장경제 내에서는 전지전능한 조정자다. 심지어 성숙한 시민의식까지도 가격으로 통제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 운전시 적신호를 위반하면 400달러 가까운 벌금을 낸다. 우리돈으로 45만원 가량이다. 신호를 위반해도 된다는 저급한 시민의식의 가격이 우리보다 열배 가량 비싼 셈이다. 미국에서 저급한 시민의식이 우리보다 덜 소비되는 이유다. 샌프란시스코 러시아워 도로위에서 앰뷸런스가 지나갈 때 모세의 기적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징벌적 벌금 시스템 때문이다.
갑질이 사회의 기대에 비해 많이 소비되는 건 적정가격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이다. 2014년 이후 벌어진 오너가의 운전기사 갑질 세건에 지불된 가격(벌금)은 최대 1500만원이다. 약식기소된 경우 300만원 벌금으로 끝난 경우도 있다. 지불 능력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가격이다.
벌금은 금지된 것을 행하는 권리의 값이다. 금연구역이란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는 건 만약의 경우 벌금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암묵적 의사 표현인 셈이다. 일그러진 특권에 대한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이거나 공급을 한정하는 것이다.
일단 사법당국이 벌금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올리는 방법이 있다. 운전기사 갑질같은 저급한 시민의식이 더 이상 소비되지 못하도록 하려면 금연구역 흡연에 부과하는 벌금처럼 계도적인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론적이긴 하지만 공급을 한정하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운전기사 갑질에 대한 형벌을 최고 징역10년으로 정하고 이를 벌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쿠퐁을 사법당국이 10장 발행했다고 치자. 공급이 정해졌기 때문에 해당 쿠퐁의 가격은 전적으로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갑질을 한 회장님의 수가 많을수록 일단 쿠퐁의 가격은 올라간다. 쿠퐁의 가격은 갑질 회장님이 ‘차라리 징역을 살고 말지’하는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쿠퐁 시세가 300억원 수준에서 정해져 있다면 이를 감내할 수 없는 피라미 회장님들은 갑질을 자제할 수 밖에 없다.
쿠퐁과 연동된 징역 형량을 올리면 쿠퐁의 가격을 추가로 더 올릴 수 있다. 300억원을 주고 갑질을 소비할 재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데 반대로 가격이 올라야 수요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 대상인 명품, 즉 배블렌재가 그렇다. 벤츠 S600을 사는 이유를 ‘가장 비싸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실제로 적지 않다.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하면서 300억원 벌금쯤 껌값으로 낼 수 있는 재벌이란 점을 과시하려는 ‘미친*’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배블렌 효과가 발표될 당시 정통 경제학자들의 눈에 과시적 소비 주체인 유한계급은 '미친*'이었다. 한가지 희망은 우리 사회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닐 것이란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