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기자 =1970년대 이후 한국 조각의 지평을 넓혀온 심문섭(74)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오는 10월 9일까지 과천관에서 '심문섭, 자연을 조각하다'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사의 주요 원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 온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의 조각 부문이다.
경남 통영 출신의 심문섭은 서울대 조소학과를 졸업한 뒤 국가 전람회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1969~71년 잇달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어 1971년부터 1976년까지는 파리비엔날레 3회 연속 참가, 상파울로비엔날레·시드니비엔날레 출품 등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81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2회 헨리무어 대상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1970~90년대 일본에서만 15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다니엘 뷔랑, 니키 드 생팔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전시했던 프랑스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한국작가 최초로 전시에 초대되는 등 현재까지도 파리, 도쿄, 베이징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시 부제인 '자연을 조각하다'는 자연의 근원에 가까운, 자연이 빚은 조각을 뜻하는 것으로, 자연의 형상성을 추구하기 보다 '그것 자체로' 있는 현상을 드러낸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서는 70년대 이후 한국 조각계에 주요하게 등장했던 물질(物質)의 개념이 심문섭의 작업 전반에 어떻게 반영·전개돼 왔는지를 살펴본다.
심문섭의 작업은 나뭇가지와 바위, 시멘트, 밧줄 등 지극히 일상적인 재료로 자연과 문명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표현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이러한 작업 경향에 대해 "유럽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가난한 미술)와 연결지어 볼 수 있다"면서도 "삶과 예술의 근접성을 추구하며 특징적인 우울함을 내포하고 있는 아테르 포베라와 달리 심문섭의 작업은 자연을 일깨우는 제시물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둘러싼 빛·바람·대기의 흐름까지 포함함으로써 자연의 순환을 통한 창조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는 그의 초기작부터 현재까지의 조각 작품들을 시리즈별로 전개하고 있으며, 조각 외에도 드로잉, 회화, 사진 등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작품의 제작 과정과 작가의 의도를 다양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온 '관계' '현전' '토상' '목신' '메타포' '제시' '반추' 등의 시리즈를 통해 작품의 재료가 되는 흙, 돌, 나무, 철 등 물질에서부터 시작해 물질 간 관계 속에서 상징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자세하게 조명한다.
한 시대의 미적 감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내재화시켰던 심문섭의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돌이 흙이 되고 흙이 돌이 되는 순환의 의미와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교감할 수 있는 회고전이다.
한편 내달 30일 오후엔 작가·큐레이터와의 만남을 통해 동시대미술의 이해를 돕는 연계 프로그램 '전시를 말하다_MMCA 토크'가 마련된다. 전시 관련 자세한 사항은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www.mmc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