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둘러싼 러시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를 둘러싼 러시아 내통 의혹이 확산되면서 러시아 스캔들이 다시 워싱턴 정가를 휩쓸고 있다.
백악관은 종전과 다름없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와의 연루 의혹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트럼프 주니어는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누구와도 공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장남과 러시아 변호사의) 만남에 대해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그 만남은 매우 짧았으며 후속 만남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주니어의 러시아 연루 의혹은 그가 작년 6월 러시아 정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변호사를 만났다는 NYT 보도에서 출발했다. NYT는 8일(이하 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주니어가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 후보 확정 2주 뒤인 6월 9일에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러시아 변호사 나탈리아 베셀니츠카야를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만남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도 동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가 나온 뒤 트럼프 주니어는 당시 만남은 러시아 아동의 미국 입양 문제를 논의했던 자리라고 대응했다.
이후 9일 NYT는 후속보도를 통해 트럼프 주니어가 이 만남에서 러시아 측으로부터 트럼프 캠프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불리한 정보를 제공받기로 약속 받았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그제서야 트럼프 주니어는 일부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ABC뉴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주니어는 성명을 발표하고 “부친의 대선 운동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을지 모른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사전에 만날 사람의 이름을 미리 듣지 못했고 실제로 베셀니츠카야를 만났을 때에도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10일 NYT는 재차 후속보도를 통해 트럼프 주니어가 사전에 이메일을 통해 한 러시아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클린턴에 불리한 자료는 트럼프 캠프를 돕기 위한 "러시아 정부 노력의 일환"이라는 내용을 미리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만남을 중개한 롭 골드스타가 트럼프 주니어에 보낸 이메일에 당시 정보원이 러시아 정부임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 정보가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서버 해킹을 통한 러시아의 대선개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없다. 그렇지만 만남 후 불과 일주일 뒤 러시아에 의한 DNC 해킹이 보고된 만큼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는 당국이 트럼프 주니어의 이메일에 높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주니어 측 변호사 앨런 퓨터파스는 10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소란을 피운다"고 일축했다. CNN에 따르면 퓨터파스 변호사는 성명에서 골드스톤이 이메일에 적은 것은 클린턴이 러시아와 연관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론은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만남에 대해 몰랐고 트럼프 주니어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주니어는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는 상원 정보위의 청문회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정보위 최고위원과 수잔 콜린스 의원 등은 당시 만남이 트럼프 캠프가 클린턴을 상대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는 분명한 근거라고 주장하면서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설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주니어도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의회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 "상원 정보위와 기꺼이 협력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적었다.
한편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주니어의 러시아 공모 의혹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그가 만난 베셀니츠카야 변호사와 이 만남을 중개한 러시아 팝스타 에민 아갈라로프와 롭 골드스톤에 대한 후속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WSJ, 파이낸셜타임즈(FT), 뉴스위크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베셀니츠카야는 작년 봄 러시아 가수 에민 아갈라로프(이하 에민)에 접근했다. 에민과 그의 부친인 러시아 부호 아라스 아갈라로프는 2013년 러시아에서 열린 트럼프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후원하며 트럼프 가문과 인연을 맺었다. 에민은 자신의 홍보 담당자인 영국인 골드스톤에게 베셀니츠카야와 트럼프 주니어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골드스톤은 당시 베셀니츠카야가 민주당전국위원회(DNC)로 들어가는 불법 선거자금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내용을 듣고 트럼프 주니어와의 만남을 중개했다. 베셀니츠카야는 트럼프 주니어를 만난 20~30분 여의 시간 동안 DNC 자금에 대해 언급한 뒤 '마그니츠키 법'으로 주제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베셀니츠카야는 당시 미국에서 자금세탁 혐의를 받던 러시아 고객을 변호하던 중이었는데 트럼프 주니어와의 만남 역시 마그니츠키 법 폐지를 위한 로비 활동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일부 외신들은 해석했다. 마그니츠키 법은 2012년 미국이 인권탄압과 관련한 일부 러시아 관리 및 친척에게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법이다. 러시아는 이후 러시아 아동의 미국 입양을 금지하는 대미인권법 제정으로 보복했다.
한편 10일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리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베셀니츠카야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러시아 정부와 베셀니츠카야의 연관설을 일축했다. 다만 WSJ 등 미국 매체들은 베셀니츠카야의 고객 중에 러시아 국영기업과 러시아 고위 관리들의 친척이 있으며 그녀의 남편은 과거 모스크바 지역에서 교통부 차관을 지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