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8월 1일 중국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여름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아주 강한 어조로 지시했다.
중국에서 상방(商幇)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인 명나라 중엽 16세기 초부터다. 산시(山西)방과 후이저우(徽州)방을 필두로 차오저우(潮州)·산시(陝西)·닝보·산둥(山東)·푸젠(福建)·둥팅(洞庭)·장유(江右)·룽유(龍游)방 등 이른바 10대 상방이 중국의 돈줄을 움켜잡고 경제계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모든 ‘상방’은 오늘날 이미 ‘역사’가 됐다. 단 하나, 닝보방만 빼놓고. 중국 경제도시 상하이 상권의 40% 이상을 주름잡는 등 닝보방의 발자국은 중국 대륙 방방곡곡, 나아가 유럽과 미주와 아프리카에까지 구석구석 찍혀 있다.
첫째, 고객 관리의 명수다. 그들에게 고객은 왕이 아닌, 옷과 먹을 것을 주는 부모, 즉 ‘의식부모(衣食父母)'다. 고객의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나의 의식주를 영위할 수 있으니 고객은 나의 부모나 매한가지다. 친부모는 나를 낳아 길러주셨지만, 내게 먹고 입을 것을 주고 가업을 일으켜 세우게 한 사람은 고객이다. 그래서 고객을 친부모처럼 공경하고 잘 모셔야 한다.
둘째,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해왔다. 이것이 바로 봉건주의, 제국주의, 군벌, 중화민국의 자본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를 거치면서도 닝보방은 조금도 노쇠하지 않고 죽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젊어지고 강해지는 비결 중의 하나다.
그들은 시종일관 국가에 충성하고 집권정부의 방침에 적절히 순응해왔다. 그 때문에 중국의 국부(國父) 손중산(孫中山)을 위시하여 국민당 정부의 수반 장제스(蔣介石), 그리고 중국 공산당 역대 지도자들의 지지와 애호를 변함없이 받았다.
닝보상인은 자신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에 결부시키고 민족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하는 태세로 기업을 경영했다. 그들은 광둥상인처럼 정치를 지나치게 배척하지도, 베이징 상인처럼 정치에 심하게 열중하지도 않으면서도 정계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원만한 관계를 지속해 왔다.
끝으로, 닝보상인은 중국 각지 상인의 장점을 한데 모아 놓은 ‘모듬상인’ 같다. 그들은 신용과 명예를 중시하되 뛰어난 상술을 구사한다. 닝보상인은 돈을 중시하나 광둥상인처럼 지나친 ‘돈벌레’가 아니고, 정직하고 성실한 편이나 산둥상인처럼 거칠지 않고, 품격에 신경을 쓰나 베이징상인처럼 관료적이지 않다. 중국 상인 중 가장 국제화했지만 외지인을 깔보고 지나치게 영악스럽다는 혹평을 듣는 상하이상인보다 오히려 친절하면서도 영민하게, 소리 소문 없이 짭짤한 재미를 보는 게 닝보상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