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트럼프는 왜 우리에게 자기도 타기 싫은 캐딜락을 사라고 하는가?

2017-07-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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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는 보호무역이 아니라 공정무역론자...아시아 시장 개방이 FTA 재협상의 목적

- 제네시스 대미 수출 지장없어...캐딜락 수입 문턱 낮춰도 품질 개선 없인 소비자 외면

 



김창익 기자 = 교포들은 미제차를 ‘어메리칸즈 카(American’s car)’라고 했다. 월가 고액연봉자들은 BMW740을 타고 서부 중산층은 혼다 어코드와 도요타 캠리에 열광했던 90년대 후반이다. BMW는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였고 혼다와 도요타는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으로 부르면서 동부 보수층이 주로 타는 캐딜락 드빌과 링컨 타운카의 이름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가 아니라 ‘어메리칸즈 카’였다.

독일산 일본산처럼 미국산으로 불리지 않고 미국인들의 차라고 불린 건 제조국이 아니라 사용자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미국에서 만든 차가 아니라 미국인들이 타는 차란 얘기다. 드빌과 타운카는 BMW처럼 제로백이 뛰어나지도 칼질(민첩한 핸들링)을 할 수 있는 차도 아니었고, 어코드나 캠리처럼 내구성과 연비도 좋지 않았다.

오히려 기름먹는 하마였고 주행 능력은 둔중했다. 기름이 물값보다 싼 나라였고 사막을 횡단하는 데 칼질보다는 장거리에도 편안한 승차감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미국산 차가 동부 양키들이나 타는 차로 전락한 건 기술력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수요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메리칸즈 카가 한국에서도 잘 팔리지 않는 건 마찬가지 이유다. 미국산 자동차는 벤츠 S600처럼 부자들의 아이콘이 될 수도, 렉서스처럼 내구성이 좋지도 않은 그저 둔중하고 비싼 차로 각인돼 있다. 캐딜락 CT6나 포드의 익스플로러 등이 연비와 저렴한 부품값 등 혁신을 무기로 최근 판매량을 늘리고 있지만 어메리칸즈 카란 주홍글씨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같은 글로벌 수요를 잘 읽지 못하는 건 2017년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아내 멜라니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탔지만 트럼프 자신은 대통령이 되기전까지는 롤스로이스의 광팬이었고, 벤츠 SLR로 칼질을 즐겼다. 백악관 입성 후엔 캐딜락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그가 한국사람들이 미국산 자동차를 더 사야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자동차와 철강 부문의 무역에서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차에 대한 깜박이 색깔과 배출가스, 연비 기준이 까다로워 미국차가 팔리지 않는다는 게 미국측 주장이다. 이같은 기준은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거나 사실이 아니라는 게 자동차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미 자동차 무역 불균형은 양국간 자동차 시장 규모와 자동차 품질의 차이가 가장 큰 이유다.

트럼프도 이 사실을 잘 안다. 미국의 캐딜락이 더 이상 미국 동부 보수층 애국심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것과 수퍼리치들도 롤스로이스 팬텀과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탄다는 사실을 말이다.

트럼프는 자동차와 철강 무역적자로 인해 주택담보대출과 대학 간 자녀 학자금을 값지 못해 거리로 쫒겨나는 미국 북동부 제조업 라인, 즉 러스트 벨트 지역의 회색컬러 노동자들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주인공이란 것도 잘 안다.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총리를 만났을 때 캐딜락과 포드를 더 사라고 압박한 것은 전적으로 유권자들을 위한 쇼다. 메르켈 총리의 말대로 캐딜락보다 BMW가 더 많이 팔리는 건 품질과 관련된 문제다. 

문제는 트럼프의 자동차 세일즈가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에 대한 립서비스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거다. 유력 언론 CNN 로고의 마스크를 쓴 사내를 레슬링 링에서 자신이 직접 매치는 28초 짜리 동영상 쇼를 트위터에 올린다고 그를 생각 없는 마초로 치부하면 오판이다.

트럼프는 이번 한미정상회담 때 우리측 주요 배석자들의 프로필을 꿰뚫고 있었던 사람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와튼 동문이란 점을 회담 분위기를 살리는 데 활용한 건 그의 애드립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이런 그가 정상회담 공동성명서 문구 하나를 빼느라 성명서 발표가 7시간 늦어진 건 유심히 볼 대목이다. 지난 30일 12시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뒤 트럼프는 허버트 맥배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3번째 항의 문구 ‘Advancing free and fair trade to promote economic growth’에서 free란 단어의 삭제를 지시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핫라인을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한 뒤 결국 free란 단어가 빠지게 됐다.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자유공정무역’을 트럼프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공정무역’으로 바꾼 것이다.

트럼프가 공정무역이란 용어에 집착한 것은 공정무역이 개발도상국, 즉 아시아 시장 개방의 유용한 공격 무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의 경제 고문이었던 스티븐 무어는 최근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아리더십 컨퍼런스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보호무역이 아니라 공정무역이란 취지의 발언을 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보호무역은 수입을 막기위한 자국의 관세장벽, 공정무역은 수출을 늘리기 위한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 철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트럼프는 자동차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우리에게 캐딜락과 포드를 더 사라는 것이지, 현대차의 제네시스와 기아차의 K7 수입을 막겠다는 게 아니다.

FTA 재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에겐 희망적인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참모들이 말하는 비관세 장벽을 설사 더 낮춘다고 해도 제네시스와 EQ900을 살 사람들이 기름 많이 먹고 고장 잘나는 캐딜락 매장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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