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FTA재협상은 '문재인과 현대차 vs 트럼프와 GM'간 제로섬 게임

2017-07-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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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적자는 100년간 누려온 달러 주조이익의 대가

- 애덤 스미스의 눈에 FTA 재협상은 트럼프의 적반하장

 

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 ‘미국이 달러를 찍는 사이 독일은 고성능 자동차 엔진을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눈에 바바리안(독일 국민)은 나쁜 민족이다.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팔아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3사 노동자의 밥그릇을 깼기 때문이다. 지난달 G7(선진7개국) 정상회담 자리에서 트럼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대독 무역적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자동차 무역적자는) 독일 자동차의 품질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독일이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게 트럼프에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경제학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당시 대화를 평가하면 메르켈은 ‘A+’고 트럼프는 '낙제'다. 스미스는 각국이 비교우위 상품 생산에 집중하는 게 이익이란 점을 증명해 자유시장경제의 이론적 배경이 됐다. 자유무역의 이익은 비교우위 상품에 대한 집중도에 달린 것이지 무역균형이 자유무역이 추구하는 정의란 논리는 경제학 어디에도 없다. 

미국은 하느님이 낳고 스미스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지만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달러가 파운드를 기축통화 자리에서 밀어내면서 미국이 비로소 패권을 쥐었다. 자유무역이 발달하면서 기축통화 달러는 날개를 달았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아이러니하지만 달러가 미국 최대의 비교우위 상품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기축통화국으로서 막대한 주조이익, 즉 세료리지(Seigniorage)를 누렸다. 종잇값과 잉크값 99센트만 들이면 100달러 지폐를 무한정 찍을 수 있는 게 미국이다. 원화 등 비기축통화국 화폐의 경우 주조이익은 인플레이션으로 대부분 상쇄된다. GM이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재무부 채권을 찍는 데 미국의 비교우위가 있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미국이 누린 세뇨리지는 쌍둥이적자(재정·무역적자)로 로널드 레이건을 압박했다. 세뇨리지에 취한 미국 정부는 달러를 찍어내는 데 거침이 없었고 저금리로 풀린 달러를 미국 국민들은 BMW와 워크맨을 사는 데 흥청망청 써버렸다.

달러는 미국의 돈이지만 그 문제는 전세계 공동의 것이었다. 쌍둥이 적자를 감당못해 미국 정부가 파산하면 BMW와 워크맨을 팔아 번 달러가 휴지조각이 된다는 게 독일과 일본의 딜레마다. 미국은 GM의 자동차 엔진과 GE의 휴대용 카세트 비교우위를 높이는 게 아니라 달러의 인위적 평가절하를 통해 쌍둥이 적자문제 해결했다.

1985년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 앤화의 인위적 평가절상에 대한 플라자합의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빚이 커지면 채무자와 채권자의 갑을관계가 뒤집히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을 돌아올 수 없는 강 너머로 보낸 미국은 그 후 반세기 동안 다시 세뇨리지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조지 W 부시 때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플라자합의 후 40년간 다시 쌓인 쌍둥지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다. 플라자합의 결과를 학습한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상대로 부시와 오바마가 제2의 플라자합의를 이끌어 내는 건 불가능했다.

트럼프가 주요국들과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나서는 건 중국 위앤화의 인위적 평가절상 의 실패에 따른 전략 선회다. 트럼프가 플라자합의로 강을 건넌 독일을 향해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파는 나쁜 국가라고 한 건 애덤 스미스의 눈에는 적반하장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사실상 TV쇼를 했다. 카메라의 빨간불이 들어오면 의제에도 없는 FTA 재협상 문제를 언급하고 불이 꺼지면 딴청을 피웠다고 한다. 자동차와 철강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최근 한미 무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한국의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이 불공정 무역장벽이 된다는 트럼프의 지적은 오류로 이미 판명이 났다. 

문제는 세뇨리지와 미국 국민 개개인의 이익에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기축통화 이익은 미국의 것이지만 저금리로 대출 받은 미국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선 대출은 언젠가 상환해야 할 빚에 불과하다. 역모기지로 부채 상환을 하며 살아온 월가의 펀드매니저와 GM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집값 하락과 실업은 사형선고다. 

이들의 민심을 자극해 권력을 잡은 게 트럼프다. 트럼프가 메르켈이 내민 손을 외면하고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TV쇼를 한 것은 지지기반에 대한 보은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트럼프는 상당히 의리있는 마초다.

우리는 무역 균형 문제에 초점을 맞춰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는 트럼프의 전략에 영악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의 무역 불균형은 달러의 비교우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이 자초한 결과다. FTA 재협상은 현대자동차와 포스코 노동자들의 지갑에서 돈을 빼 GM과 포드 노동자들의 지갑을 불려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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