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성장 경제 정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달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고 안전자산인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약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대야소의 유리한 국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안이 의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데다 러시아 스캔들 속에서 탄핵설까지 제기되는 등 국정 운영이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하자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자산 시장에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경제매체 CNN머니의 집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며 7개월래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흐름이 반전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의 6월 금리인상 전망에도 불구하고 최근 경제 지표가 부진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정책이 현실화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앤드류 헌터 이코노미스트는 CNN머니에 “트럼프 행정부의 무질서한 성격 때문에 투자자들은 조만간 대통령이 약속한 대규모 재정 부양책이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세금 인하, 규제 완화, 인프라 지출 확대 등을 내놓았다. 그가 당선되자 투자자들은 이 같은 친성장 정책이 미국의 경제 성장을 부채질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달러를 매수했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달러 가치는 5% 이상 오르면서 13년래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는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15%까지 내리는 1페이지짜리 세제 개혁안을 공개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았고 세수 결손을 충당할 방법도 마련되지 않아 의회에서 계류되고 있다.
기업들도 정책 실패를 우려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미국 200대기업 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의 조쉬 볼튼 의장은 6일 “미국 CEO들은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 하의 경제 전망을 낙관하지만 개혁안 좌초로 인한 하방 위험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번 주를 ‘인프라의 주’로 천명하면서 인프라 투자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본격 움직임에 나섰지만 시장 관심을 제임스 코미 FBI 전 국장의 의회 증언에 빼앗겨버렸다. 8일 증언에서 코미 국장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유착,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중단 압박 등과 관련해 폭탄 발언을 내놓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론에 불이 붙을 수 있다.
다만 미국 증시는 낙폭이 제한되면서 호조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올 들어 8.5%나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의회 지도부를 만나 "우리가 미국 기업들의 가치를 3조6000억 달러나 높여놨다"고 과시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 주식 상승세는 트럼프 효과라기보다는 아마존이나 알파벳 등 기술주 강세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파이낸셜타임즈(FT)는 전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가져올 친성장 효과에 큰 기대를 나타냈던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CEO도 종전과 사뭇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에 “전체와 부분, 조화와 갈등의 선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부분과 갈등에 치우치는 성향이 강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화보다 갈등을 택할수록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