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智樂弼樂
조용준(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사실 일자리 만들기는 지구촌 모든 나라에 해당하는 사안이라서 이 문제로 머리를 싸매지 않는 지도자가 없다. 그러나 삶의 환경이 갈수록 디지털화되어 가고,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면 할수록 사람의 힘 대신 기계와 인공지능이 담당하는 영역이 늘어나니 이처럼 모순적인 어젠다도 드물다. 문명은 일자리를 없애는 쪽으로 가는데, 인위적으로 이를 거스르려니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속담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어쩌면 이럴 때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시선을 마치 강박증 환자처럼 ‘일자리 몇 개’에만 붙들어두지 말고, ‘일자리를 만들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차원에서 이제 막 1세기로 접어든 로마를 들여다보자. ‘팍스 로마나’를 구가한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는 두 명의 절대적인 조력자가 있었다. 그 한 명은 어릴 때부터 허약했고 군사적 재능이 부족했던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를 보좌하기 위해 양아버지 카이사르(시저)가 의도적으로 붙여준 친구이자 비서 겸 보디가드, 나중에는 사위도 되는 복잡한 관계의 아그리파다. 또 한 명은 친구이며 1급 참모이자 외교밀사 기능을 담당했던 마이케나스다.
아그리파는 걸출한 군인으로 아우구스투스가 거둔 군사적 승리는 모두 그의 전략과 지휘 덕분이었다. 아그리파는 또 뛰어난 토목건축가로 독일의 쾰른(로마 시절 이름은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을 군단기지로 건설했고, 오늘날까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로마시대 건축물인 판테온을 만들었으며, 로마 최초의 공중목욕탕도 건설했다. 뒤로 돌아서서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고 하여 인기가 많은 트레비 분수가 유지되는 것 역시 아그리파가 뚫은 수로 덕택이다. 그의 업적은 프랑스 님(Nime) 근처의 거대한 수도교 ‘퐁 뒤 갸르’로도 남아 있다.
마이케나스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활약했다. 전쟁터를 아그리파에게 맡겨둔 아우구스투스는 마이케나스에게 외교를 담당하게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경쟁자를 차례로 쓰러뜨리며 마침내 악티움 해전(B.C. 31년)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할 때까지 마이케나스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이렇게 친구가 황제로 등극하자 마이케나스는 예술과 문화, 홍보로 분야를 옮겼다. 라틴어 시문학의 황금시대를 연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난 것은 전적으로 마이케나스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메세나’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바로 마이케나스다.
이처럼 ‘팍스 로마나’를 여는 데 기여한 두 조력자가 각기 토목과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군사적 정복은 의미가 없어져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 시민들의 바람에 부응하여 아우구스투스는 병력의 절반 이상을 제대시켜 군비 축소를 단행하고, 대대적인 공공사업과 문화예술 활동 진작으로 제국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듯했지만, 애초 윗목까지 온기를 전할 마음도 없었던 아랫목만의 ‘헛된 잔치’를 벌였다. 박근혜 정부도 ‘문화융성’의 기치를 내건 권력의 사익화와 농단으로 국민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겉으로만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으며 토목과 문화 모두에서 실패했다. 사실 예술문화 창달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는 문화융성이란 단어만 더렵혀 놓고, 시작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예술문화는 정보통신기술(ICT)처럼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으로 뛰어오르는 ‘리프 프로깅(Leap-Frogging)'이 힘들다. 꾸준한 관심과 투자, 장려만이 해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의 수단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인문학의 바탕 위에 창작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비경제적 행위가 오히려 경제의 핵심 인프라가 된 지 오래다. 문화예술은 시장경제 저편에 있다. 우리는 문화의 힘으로 일자리도 늘리는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문화 대통령, 메세나 대통령도 보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