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차이나 김중근 기자 =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will pass away).’ 3천 년 전 솔로몬 왕자가 남긴 명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여파로 경색됐던 한중관계도 예외일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중 갈등이 해빙 모드로 돌아서는 형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전례 없이 축하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13일에는 일대일로 정상포럼 참석을 위해 방중한 우리 정부 대표단의 박병석 의원을 면담했다.
반한 감정을 부추기던 중국의 언론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잠잠해졌다.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부추겼던 중국 현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도 잠잠한 상태다.
중국 당국의 일련의 제스처를 감안하면 중국의 보복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일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도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가 풀려 대(對) 중국 영업이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3월초 운영 중단됐던 중국 롯데마트 홈페이지도 두 달여 만에 재가동에 들어갔다. 중국 음원 사이트에서 사라졌던 케이팝(K-POP) 차트도 재등장했다. 한국 문화·콘텐츠를 제한하는 이른바 한한령(限韓令) 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본격적인 ‘포스트 사드(Post-THAAD·사드 이후)’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사드 정국을 거치면서 수교 25년 만에 드러난 중국의 민낯을 봤다는 사실이다. 어떤 계산을 하고 있는지 속내도 가늠하게 됐다.
사드는 우리에게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거칠기 짝이 없는 보복을 보면서 우리 경제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드 정국 이후에 우리는 대(對) 중국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한류 분위기에 편승해 중국에서 쉽게 돈을 벌어왔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이 한국의 중간재(부품과 반제품)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기술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중간재는 중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중간재 자급률이 60%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내에서 부품을 스스로 조달하고 완제품 생산까지 마치는 자급자족식 공급망인 ‘홍색공급망(紅色供給網, red-supply-chain in china)’의 영향력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부품과 설비 등의 분야에서 추진해온 국산화정책을 생각하면 중국의 이같은 홍생공급망 강화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당연히 한국산 중간재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자기기, 광학기기, 기계류, 차량부품 등 대중국 수출 상위 품목을 제외한 경쟁력 없는 품목은 이제 중국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더 큰 위기는 주요산업이 중국에 속속 덜미를 잡히는 상황에서 미래의 비교우위 산업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 앞으로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드 정국이 해결된다고 해도 중국의 한국기업에 대한 압박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중국의 외자유치 정책과 규제’ 보고서를 통해 “일부 철강, 화학제품 등에 대한 반덤핑 조사나 식품, 화장품 등에 대한 통관 지연 등은 사드 배치가 이슈화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취해져 온 조치들”이라며 “사드가 아니어도 어차피 닥쳐왔을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드는 빌미였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울고 싶은 데 뺨 맞은 격’인 셈이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죽을 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가 크다. 현대자동차 중국공장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3조16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조2000억원 이상 급감했다.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3분의2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반한 감정 고조와 로컬 자동차 업체의 성장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포스트 사드’ 시대에 중국 비스니스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중국의 산업 생태계는 나날이 크고 강해지고 있다. 외국기업에 대한 규제도 고도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발굴해 공략하라고 조언한다. 또 시장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강세인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섬세함과 디테일이 강점이다. 영화·드라마·화장품·성형·게임 등이 그것이다.
중국은 과거에는 인산인해(人山人海)의 인구를 앞세운 노동력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펼쳤다. 하지만 이제는 엄청나게 커진 구매력으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시장에서 싸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비싸게 파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결론은 ‘쌍끌이 전략’이다. 쌍끌이 전략은 창의력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하나는 예전에 그랬듯이 다시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창조적 활동으로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제조 분야에서 믿을 건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기술력밖에 없다. 정부는 기업이 마음껏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 하나는 ‘소프트 분야’다. 창의적 발상으로 중국의 거대한 구매력을 공략해야 한다. 승산이 높다. 박한진 KOTRA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정국 경제라는 밭이 바뀌면 우리가 뿌리는 씨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변신해 ‘세계의 경쟁 무대’가 된 만큼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사드 정국을 통해서 중국의 민낯을 보았다. 우리가 중국을 제대로 보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 한·중 수교 25주년.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상황은 언제나 벌어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건 벌어진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사드는 극적인 반전을 일으키는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창의적 발상과 창조적 활동, 이 두 가지가 13억 중국시장을 제대로 꿰뚫을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