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은 달포 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서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새로운 지도자 상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남북화해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 셋째로 풍요로운 농촌을 이룩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몇 가지 농업 공약을 제시했다. 농어업특별기구를 설치하여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살피겠다는 것과 농가소득 향상, 농민 복지 확대, 여성 농업인 권리와 복지 확대, 농산물 유통체계 개선 등이다. 이를 통해 안심하고 농사지으며 국민 모두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모두 꼭 이루어야 할 공약이고 풍요로운 농촌 건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약이다.
문제는 그동안 여러 대통령이 비슷한 공약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앞전 정부에서도 농가 소득 안정, 유통구조 개선, 첨단 과학기술 접목을 통한 경쟁력 향상을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농업 여건은 더욱 어려워졌고, 농민들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사실, 농업과 농촌은 우리나라를 위해 수많은 일을 했다. 녹색혁명으로 쌀 걱정 없게 만들어준 것뿐만이 아니다. 그 동안 산업화 논리에 밀려 사람과 농지를 내주었고, 물가안정이란 미명하에 정부에서 통제하는 낮은 농산물 가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농민들은 우리나라 국민을 먹여 살렸다. 그 덕분에 이제 굶는 사람은 없다. 비록 농업 여건은 나빠졌지만, 국민 생활은 먹고 살만 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 농업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농가인구는 2010년 3천 63만 명에서 2015년 2천 569만명으로 16%나 줄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마저도 65세 이상이 38%가 넘는다. 일인당 쌀 소비량도 줄었고, 식량자급률도 하락했으며, 농업의 GDP기여율도 떨어졌다. 어느 것 하나 좋아진 게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농업도 시장자본주의 원칙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경쟁력이 없으면 낙오되어야 한다는 거다. 당장은 쌀이건 과일이건 외국에서 사서 가져오는 것이 싸니까 수입해야 하고, 경쟁력 없는 농업은 다른 산업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가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쌀이 28만 톤이나 남아돌고, 쌀값 하락분을 보전해주는 직불금으로 작년에만 1조 4천9백억 원이나 나갔다며 세금으로 막아주는 농업 보조금을 당장 없애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선진국을 목전에 둔 우리는 농업을 바라보는 근본 인식을 바꿔야 한다. 농업과 농촌은 국토, 환경, 국가의 상업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기에,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농업은 국가가 공개념으로 보호해야 할 기간산업이고, 농산물은 군수물자와 같이 식량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대선 기간 동안 출마자들이 외친 쌀목표가격 인상이나 물가상승률 반영만으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농업을 첨단산업으로 바꾸고, 정부가 나서서 생산·유통·소비·재고 등 쌀 산업의 모든 가치사슬을 포괄하는 전방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살피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농업인에게는 경쟁력을 갖춘 ‘일터’를 만들어주고, 도시 소비자나 은퇴자에게는 새로운 주거공간으로서 ‘삶터’를 제공하며, 국민 모두에게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쉼터’를 꾸며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그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농업에게는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또한 정의롭지 못하기에 농민과 함께 온 국민이 힘들어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농업과 농촌을 일터, 삶터, 쉼터로 바꾸어서 도시와 농촌이 정의롭게 조화를 이뤄야 풍요로운 농촌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도시와 농촌의 통합이고, 더 나가 온 국민의 통합이다.
이번 기회에 명토 박아 둔다. 농어업과 농어촌을 홀대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없다.
[성제훈 농촌진흥청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