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상왕론' 논란도 영향…'뚜벅이 유세'로 유종의 미 거둬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이끌었던 '녹색태풍'의 꿈이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안 후보의 대권도전에는 애초부터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40석에 불과한 제3당이었던데다 안 후보의 개인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안 후보는 경선과정에서 호남을 시작으로 '안풍'을 불러오기 시작하더니 본선 국면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만든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쟁후보들로부터의 '네거티브'성 공격을 받고 TV토론을 거치면서 지지율은 급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 후보 측이 상황대처에 있어 약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미경 교수의 서울대 '1+1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해명이 늦었고, 안 후보 의원실 보좌진에 대한 김 교수의 '갑질 논란'에 대한 대응도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세 역시 안 후보를 뒷받침하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TV토론이 결정적 타격이었다. 안 후보는 경선 TV토론에서 무난함을 보여줬고, 강연 등으로 단련됐다는 점에서 애초 TV토론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돼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안 후보는 첫 TV토론에서 기대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평타'를 친 두번째 토론회에 이은 세 번째 토론은 지지율 상승세의 발목을 잡았다. 안 후보 스스로 '갑철수' 'MB 아바타'의 네거티브 수렁에 빠지면서 보수층의 급격한 이탈을 야기한 것이다.
호남에서 문 후보 측의 'MB 아바타' 공세를 막아야 한다는 일부 호남의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TV토론에서 짚고 넘어가려다 스스로 무너저버렸다는 지적이다.
이후 TV토론에서는 다시 페이스를 찾은 모습이었지만, 이미 만회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허약한 당세는 안 후보의 뒤를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했다.
TV토론으로 '주적 논란' 등 진보와 보수 간 대결의 프레임이 형성된 데다, 안 후보 스스로 이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도 문제였다. 진보와 보수로 넓게 퍼져있는 지지층을 끌고가려다보니 자신의 페이스를 잃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안 후보의 최후의 보루였던 호남에서도 문 후보에게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개표 결과는 안 후보의 호남 득표율이 문 후보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참담한 성적표로 나타났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안 후보만이 내세울 수 있고,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미래 대결' 구도를 형성하지 못한 채 기존 양당체제의 프레임에 빠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부상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TV토론 이후 지지율 급락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캠페인 전략을 일찌감치 전환하지 못한 점도 패배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4일 뒤늦게 유세차를 버리고 '뚜벅이 유세'로 전환해 국민 속으로 뛰어들며 제2의 안풍을 재점화해보려 했으나,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상임선대위원장인 박지원 대표에 대한 '상왕론' 공세도 대처가 늦었다는 분석이다.
박 대표가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차단에 나섰지만, 이미 홍 후보 측이 적극적으로 불을 지핀 상왕론은 대구·경북(TK) 등에서 퍼진 뒤였다.
텃밭인 호남에서의 기선제압도 실패했다. 선대위 출범 당시부터 호남 의원들을 호남에서 집중시켜 호남의 여론조사에서 확실히 앞서야 한다는 전략이 나왔으나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TV토론에서의 실수가 가장 컸는데, 실점을 만회할 수 있는 선대위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서 "호남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해야 수도권과 영남권에서도 안 후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줄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안 후보는 뒤늦은 '뚜벅이 유세'를 통해 유종의 미는 거뒀다는 평가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쏟아붓고 젊은 층을 위주로 시민들과 직접 호흡하는 모습을 보인 점은 승패를 떠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 후보가 전날 공식선거운동 종료 직전 홍대의 한 카페에서 페이스북 라이브 행사가 끝낸 뒤 지지자들은 패배를 예감한 듯 "이미 과정에서 승리하셨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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