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대학생이던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을 대흥사로 이끌어 사시합격을 도운 '인생의 은인' 경희대 전 학장 고기채(80)씨가 제자의 당선 소식에 "정직하고, 용서하고, 끌어안는 대통령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고씨는 9일 연합뉴스 기자를 만나 "바른 정치하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고씨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자서전 '운명'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한) 대흥사에 묵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이라고 밝힌 인물이다.
문 당선인과 고씨의 인연은 1972년 경희대 법대 입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희대 학생지도과정을 맡으며 장학생을 관리하던 고씨는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한 문 당선인과 관심에서 시작해 호감으로 이어지는 인연을 맺었다.
고씨는 문 당선인을 부리부리한 눈의 잘생긴 얼굴에 성격까지 좋은 순수하고, 여린 영혼을 가진 학생으로 기억했다.
3학년이 된 문 당선인이 총학생회 간부를 맡으며, 시국 투쟁을 하다 붙잡혀 처벌을 받자 고씨는 학생과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제적 대상자 명단에 직접 문 당선인의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특전사 군 복무를 마치고 1978년 제대한 문 당선인은 아버지의 49재를 치른 지 바로 다음 날 고씨의 손에 이끌려 전남 해남군 대흥사로 향했다.
고씨는 "잔소리하지 말고 고시 서적을 싸들고 나오라"고 말하며 다짜고짜 문 당선인을 승용차에 태워 서울에서 해남까지 내달렸다.
"절에서 고시 공부하라"라며 문 당선인을 암자에 앉혀놓고, 주지 스님에게 "누구와도 면회시켜주지 말고 잘 보살펴달라"고 당부했다.
고향 지인에게 수시로 찾아가 공부 잘하고 있는지 암암리에 살펴봐 달라고도 당부했다.
하숙비를 집에서 도움받을 형편이 안됐던 당시 문 당선인에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문 당선인은 이 인연으로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해 1980년 신군부에 저항하다 붙잡혀 갇힌 청량리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사시 2차 합격소식을 들었다.
합격소식을 들고 온 이는 당시 문 당선인의 여자친구였던 부인 김정숙 씨였다.
문 당선인은 후일 이 일을 회상하며 "선생님 아니었으면 제가 이렇게 성장했을까 싶다"며 "기틀은 선생님이 쌓아주셨다"고 말했다고 고씨는 전했다.
고씨는 문 당선인의 제19대 대통령 당선 소식을 누구보다도 반갑게 받아들이며 "선거 과정에서 서로 공격하고 상처입힌 이들을 모두 용서해 새로운 출발을 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달라"며 "어느 한 지역의 대통령이 아닌 모두를 아우르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당선인과 김정숙 부인을 만나면 악수 대신 포옹으로 반기고, 전남 지역에 선거운동 올 때면 앞서진 않아도 한발 물러서서 돕던 고씨는 공교롭게도 제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10일 미국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는 "재인이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제자의 앞길에 혹시나 방해되지 않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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