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김은경 기자 = 미세먼지가 '보통'이라는 예보를 믿고 안심하고 외출했다가는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의료 전문가들은 국민 건강을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나 유럽 주요 선진국보다 느슨한 우리나라 미세먼지 농도 기준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초미세먼지 기준 선진국 비해 느슨해…올해 안에 강화
우리나라는 현재 초미세먼지(PM2.5) 기준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보다 느슨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미세먼지는 일평균 50㎍/㎥를 초과하면 나쁘다고 보지만 미국·일본 등에서는 35㎍/㎥를 초과하면 나쁘다고 본다.
환경부는 이러한 기준을 1995년 채택했는데 당시 WHO가 제시한 4단계 안 중 3단계를 골랐기 때문에 2단계를 고른 미국과 일본보다 기준이 낮다.
환경부 관계자는 "당시 우리나라 대기 수준 등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며 "중국의 경우 가장 느슨한 4단계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PM10)의 경우 초미세먼지만큼 인체에 해롭지 않아 국제적인 기준도 마땅히 없고 관리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미세먼지보다는 초미세먼지에 집중해 정책을 세울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달 대기환경학회에 초미세먼지 기준 수립에 관한 연구용역을 줬는데 이르면 7월 정도 중간 안이 나올 것"이라며 "중간 안을 토대로 법 개정에 들어갈 텐데 선진국 수준인 35∼37.5㎍/㎥ 정도로 기준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또한 하루빨리 초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일 수 있게 실효성 있는 기준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조천 건국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미세먼지보다는 피를 타고 허파와 뇌까지 들어갈 수 있는 초미세먼지가 더 문제"라며 "그동안에는 환경에 재원을 많이 투자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환경에 신경 써야 할 시점이 왔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실외와 실내를 나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를 관리하는 데 둘 다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어린이집 등 취약층이 있는 실내 공간은 기준을 더 강화하는 등 공간별로 구분해 밸런스를 맞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세걸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기준을 국제 수준으로 맞춰 강화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 기준도 구속력이 없는데 강화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기준이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 미세먼지 '보통'도 건강에 위험 가능성…만성질환자·노약자 등 특히 위험
미세먼지가 높다고 반드시 외부활동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미세먼지 기준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환경부는 미세먼지(PM10)가 31∼80㎍/㎥일 때를 '보통'으로 규정하고 있다. WHO의 경계단계 기준은 일평균 50㎍/㎥로 우리나라 '보통' 일부 구간(51∼80㎍/㎥)이 WHO의 미세먼지 경계상황에 해당한다.
환경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세먼지가 '나쁨'(PM10의 경우 81∼150㎍/㎥, PM2.5의 경우 51∼100㎍/㎥)을 나타내더라도 일반적으로 건강한 성인이라면 가벼운 외부활동은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다만 외부활동을 한다면 미세먼지 예보현황을 확인하고, 가능하면 실시간 미세먼지 농도를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런 환경부 입장에 대해 "100% 맞거나 100% 틀렸다고 말하기 힘든 모호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미세먼지 '보통'과 '나쁨' 기준인 PM10 80㎍/㎥ 이하에서는 공기 질이 건강에 아주 좋고 그 이상에서는 아주 안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세먼지 농도와 이와 관련된 사망률과 질병 발병률 등은 선형적으로, 즉 직선 형태로 비례해서 증가한다"면서 "이 때문에 미세먼지 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안 좋은 것이어서 정확한 위험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고 사회 상황을 반영해 그 기준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임종한 인하대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환경부 입장을 두고 "건강한 사람의 경우만 그럴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나쁨' 수준도 지장이 없지만, 천식이나 당뇨병 환자, 혈압이 높거나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이 있는 사람이 노출되면 기존 질환 악화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만성질환 등 기존 질환자가 국민의 10%를 넘기 때문에 미세먼지 '나쁨'의 경우라도 건강에 부담을 준다"면서 "어린이나 노인은 '나쁨' 조건에서도 신체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가 미세먼지가 수도권 지역 거주자의 사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2010년을 기준으로 수도권에 사는 30세 이상 성인 가운데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 수는 같은 연령대 총 사망자의 15.9%(1만5천346명)를 차지했다. 예컨대, 1만5천 명 이상이 예기치 않았던 질병으로 수년이든, 수개월이든 조기에 사망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미세먼지 등급을 선진국에 맞춰 조정하고 에너지와 산업정책도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 교수는 "WHO는 연평균 초미세먼지 기준이 10㎍/㎥로 가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는 25㎍/㎥ 수준이다"면서 "뉴욕, 파리,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가 1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더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세먼지 예보 기준도 조정해서 일정 정도 이상인 경우 차량 2부제를 시행하거나 시민도 가능하면 미세먼지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지금 우리나라 미세먼지 수준이 외국보다 높으니 기준 목표를 낮추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과 정부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 같은 경우 노후 경유차가 진짜 문제"라면서 "시민들이 건강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대기오염을 줄이겠다는 각오가 필요하고 이를 정치권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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