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자유경제원은 20년 전인 1997년 재계 싱크탱크로 출범했다. 처음 이름은 자유기업센터다. 다시 자유기업원을 거쳐 7년 전 현재 법인명으로 바꿨다. 설립을 제안한 인물은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다. 전경련이 130억원 가까이 출연했다. 종잣돈 외에도 해마다 20억원 안팎을 보태왔다. 경제에 이로운 여론 형성이나 교육사업에 나서주라는 명목으로 돈을 댔을 것이다.
정작 경제보다 정치에 너무 힘을 뺐다. 두 달 전쯤이다.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는 '야, 그게 종북이야!'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금은 지워버려 볼 수 없는 글에서 주장했다. 이미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지만, 잔당이 건재하다는 거다. 근거로는 남파공작원 출신으로 알려진 김동식씨를 댔다. 그가 했다는 얘기다. "북한은 통진당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공작을 전개했다."
아니면 말고다. 누가 잔당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부여 무장간첩 사건은 1995년 터졌다. 김동식씨는 이 사건을 일으킨 무장간첩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검찰은 김동식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접촉했다고 주장한 야당 인사만 문제로 삼았다. 무죄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김동식씨를 신뢰하지 않았다. 자유경제원은 이런 사실을 두 달 전 글에 안 넣었다.
통진당은 2014년 말 해산당했다. 그래도 종북 타령은 넌덜머리 나게 이어졌다. '2016년 총선, 이런 사람은 절대 안 된다'라는 토론회가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열렸다. 친북 성향이거나 반시장적인 정치인은 뽑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사실상 정치 개입이다. 야당후보 낙선운동을 한 거다.
균형을 잃었다. 여당을 돕는 일이라면 주저없이 나팔수로 나섰다. 자유경제원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여론을 만들어갔다. 한술 더 떴다. 역사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 윤리 교과서도 국정화하자고 주장했다. 우리나라가 청년층 사이에서 '헬조선'으로 불리는 것도 검정교과서 탓으로 돌렸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서 일했던 홍종학 전 의원이 물었다. "전경련은 정치와 무관한 재벌 친목단체에 불과하다. 위장계열사인 자유경제원을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숫자로 보는 자유경제원은 가난하지 않다. 1년 전 국세청에 결산서류를 냈다. 금융자산이 108억원, 건물과 토지 17억원, 나머지 기타 자산은 3억원에 달했다. 모두 더하면 128억원이다. 금융자산에 붙는 이자만 3억원을 한참 넘었다. 여기에 전경련도 해마다 20억원 안팎을 대줬다. 자유경제원에서 일하는 임직원 수는 모두 25명밖에 안 됐다. 이런 자유경제원이 개점휴업 상태다.
이유는 뭐냐. 돈줄인 전경련이 손을 들어버렸다. 회비 수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4대 그룹이 전경련에서 빠졌다. 전경련은 직원 130여명 가운데 50% 이상을 내보내야 할 처지다. 이렇게 해도 존속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전경련은 해마다 5월이면 회비를 걷었다. 올해에는 남은 회원사가 돈을 내줄지 모르겠다. 대선 기호 1번인 문재인 후보는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와 만날 때 전경련만 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공범으로 불리는 전경련과는 할 얘기가 없다는 거다.
정부는 목적사업을 수행하지 않는 재단법인을 해산시킬 수 있다. 자산은 국고에 넣는다. 자유경제원을 설립할 때 인가한 곳이 기획재정부다. 기재부는 들여다봐야 한다. 자유경제원은 여론을 왜곡해 국민을 둘로 쪼개고, 정치에 개입한 증거를 없애고 있다. 이제 이렇다 할 일도 하지 않는다. 전경련 출연금은 사사롭게 모은 게 아니다. 회원사 하나하나가 회사 이름으로 낸 돈이다. 비정상적인 재단법인 금고에 더 이상 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