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에게 재무설계를 상담해 온 오유랑씨(가명·31)는 남편, 자녀 하나와 살고 있다. 맞벌이 가계로 소득은 적지 않지만 지출이 많고 빚도 점점 늘어 너무 힘들다는 게 요지였다.
그렇다고 오씨 부부가 과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오씨가 보여준 가계부에는 부부가 얼마나 알뜰하게 생활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부의 월 소득은 합산해 약 450만원이었고 월 생활비 지출은 200만원가량이었다. 지출항목은 세금 및 공과금 약 50만 원, 생활비 약 100만원, 차량유지비 30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등이었다.
문제는 빚이었다. 집을 살 때 얻은 담보대출 2억원의 상환원리금 180만원과 마이너스대출 이자 30만원이 고정적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빚을 갚을 목적으로 가입한 정기적금 50만원까지 합하면 월 지출은 460만원. 매달 10만원씩 빚이 불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보다 더 절약하기는 힘들다’ 싶을 정도로 쥐어짜며 빚을 갚아나가도 원리금이 줄지 않아 지친다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소득에 비해 수월하게 빚을 줄여가는 사람들도 있다. 빚에서 빨리 자유로워지려면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마구잡이식으로 아무 대출이나 갚아나가면 비효율적이다. 부채규모, 상환기간, 상환순서 등을 고루 따져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긴다면 무계획인 경우보다 훨씬 빨리 빚을 청산할 수 있다.
빚 청산 자금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돈을 벌어 빚을 갚거나, 현재 자산을 현금으로 바꿔 빚을 상환하는 것이다. 대출을 오래 끼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지금 수중에 돈이 없어 빚을 못 갚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대출이자를 내는 한편으로 적금이나 다른 투자에 꾸준히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투자와 빚상환을 병행하며 계속 이자를 내는 게 나을지, 빚부터 갚고 나서 조금씩 투자를 늘리는 게 좋을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빚으로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는 현금흐름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빚이 현금흐름에 미치는 악영향은 금리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만약 이자·원리금 상환으로 나가는 돈이 월 수입의 30%를 넘는다면 대출 갈아타기가 필요하다. 대출기간, 거치기간, 상환조건 등을 조정해 월 상환금액을 적정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모기지론 같은 고정금리 담보대출을 받은 경우 수년 전 대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출 갈아타기를 하면 1~2% 정도 금리를 낮출 수도 있다. 다만 중도상환 수수료가 부과되는지, 부과된다면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야 한다면 마이너스통장과 같은 신용대출보다는 부동산대출과 같은 담보대출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신용대출은 담보대출에 비해 절차가 훨씬 편리하지만 빚을 내는 데 편리함은 장점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당연히 이자부담이 적은 담보대출을 우선해야 한다. 빚을 갚을 때는 금융비용, 현금흐름, 상환조건 등 세 가지 기준에서 따지고 금리가 높은 순서부터 낮은 순서로, 신용대출부터 담보대출 순으로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
재테크의 첫걸음은 빚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갖는 것이다. 빚에 끌려 다니면 끝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빚은 결코 장밋빛 미래를 안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내가 빚에 익숙해졌나?’ ‘이자의 함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나?’라고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라는 말로 자신의 빚을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드문 경우지만 확실한 투자처가 있다면 모를까, 막연한 정보에 의지해 빚을 내 투자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재테크가 아니다. 빚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과 빚에 끌려 다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현재 빚이 있다면 일단 어떤 용도의 빚인지 따져본 후, 만약 빚에 끌려다니고 있다면 최대한 빨리 갚을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