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모석봉 기자 = 2017년 새해를 맞아 국립대전현충원에는 현충탑 참배 행렬이 이어졌다.
안장자의 유가족 뿐만아니라 기관․단체 비롯하여 일반시민 등 4천여 명이 찾아와 나라에 헌신하신 분들을 추모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2017년의 방향성을 생각해본다.
역사 속 정유년에 일어난 큰 사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420년 전에 일어난 정유재란과, 120년 전인 1897년에 단행된 대한제국의 선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420년 전인 1597년에는 일본이 조선을 다시 침략해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명나라 군대까지 참전하면서 전쟁은 장기전의 양상을 띠었고, 명나라와 일본이 주도하는 강화회담이 열렸으나 협상이 결렬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1월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1597년 7월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무서운 기세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했으나,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제독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군선들을 수습해서 10배나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1597년 9월의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20년 전 정유년에는 조선의 왕이 황제가 되고 국호가 바뀌는 큰 변화가 있었다.
1896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1년여 동안 머물다가 경운궁으로 돌아와 근대국가 수립에 필요한 기구를 설치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하며 자주국의 면모를 과시해 나갔다.
10월 12일에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이미 건설해 놓은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는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한 것은 삼한(三韓)의 옛 영토와 역사를 계승하는 ‘큰 한(韓)’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때 정한 ‘대한’이라는 국호는 공화정 체제로 출범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60년 전 1957년의 정유년은 6·25전쟁의 폐허와 상처를 극복해 가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던 시기로,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가난과 어려움을 겪은 때였다.
정유년 새해를 맞이하며 저마다 새로운 목표나 각오를 했을 것이다.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어보며 힘든 현실을 이겨내려는 염원 때문일 것이다.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나 기관도 마찬가지다.
국가보훈처는 2017년도 외교안보분야 정부합동업무보고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호국보훈정신 함양을 주제로 국가안보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올해부터 비군사적 대비업무를 본격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비군사적 대비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한미연합방위태세를 대비해야 하고 이러한 군사대비 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사랑 교육을 통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적극 알린다는 계획이다. 2005년 2월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한지 12년째다.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필수적인 수단과 그것을 뒷받침할 국민들의 정신적 지지를 강화하는 것은 불안한 안보현실에 직면한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12척 뿐인 조선 수군과 300척의 왜군 압도적인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역사를 바꾼 힘은 무엇이었을까?
사자성어 중에 하나로 화합하여 화살이 과녁을 꿰뚫는다 라는 말이 있다. 역사 속 정유년의 교훈을 토대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모으고 모두가 하나로 화합하여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