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첨단과학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새해'라는 희망을 품고 과학과는 조금 거리를 둔 인문학적 ‘닭띠’에 역설적으로 적지 않은 관심을 갖는다. 어쩌면 원시시대 수천년 전부터 축적된 인류의 지적경험과 시행착오로 만들어진 ‘띠’라는 키워드를 새해라는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기대속에서 ‘희망’의 집단무의식에 주입시키는데 성공한 듯하다. 어떤 AI가 와도 우리 인류가 마침내 이긴다면 그 이유는 결국 '희망'이라는 우리 인류의 전유물 때문은 아닐까? 희망의 내일에 대한 기대와 준비가 있기에 인류는 모든 고통을 딛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과학문명은 인류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린 SF판타지 'AI' 속 미래 지구에서는 모든 생활을 감시받는 인간들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가진 인조인간들의 봉사를 받으며 살아간다. 감독의 상상력 속 세계는 언제부턴가 '오래된 미래'의 데자뷰처럼 우리 현실로 성큼 다가온다. 지난해 ‘인류 대표’ 이세돌 9단을 침몰시키며 세계 바둑계를 넘어, 전 인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알파고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연말연시 연휴를 보내며 쉬는 사이에도 알파고는 진화를 계속하며 더 막강해지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인류를 말살하려는 로봇에 맞서 나노 터미네이터 T-3000으로 변해 과거로 간 존 코너처럼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지 모른다.
동틀 무렵 장닭은 훼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서 새벽을 알리는 시보(時報)의 역할을 잘 완수한다. 칸트처럼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이미지가 박힌 닭은 우리 조상들로부터 오덕 가운데 특히 신(信)의 덕을 갖춘 주인으로 사랑 받았다. 삼국지에 나오는 용맹무쌍한 관우가 재복과 상업의 신이 된 것도 그가 보여준 ‘신의(信義)’ 때문이었다. 농경사회에서 기침해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을 알려주는 믿음의 상징이자 살아 숨쉬는 시계로서 닭이 강화의 관제묘와 경복궁 근정전의 월대를 지키고 전통 혼례상위에 닭을 올려져 결혼 서약의 절을 받는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흔히 칭송된다. 즉 닭의 벼슬(冠)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나타내며,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닭이 울면 긴 밤이 끝나고 아침이 찾아온다. 무명이 사라지고 희망찬 해가 오르는 가운데 닭이 자리잡고 있다. 밝음을 싫어하는 귀신들은 아침을 부르는 장닭이 미워도 너무 밉다. 그걸 아는 우리 조상들은 닭 그림을 벽에 붙여 잡귀를 물리치려고 했다. 무속에서 닭피를 뿌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축귀와 액막음의 상징이 된 닭 그림에 자식 욕심이 많은 우리 조상들은 병아리들도 넣어 그리곤 했다. 나아가 부귀공명과 입신출세,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사대부들의 성화에 못이겼는지 아니면 배려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변상벽, 신윤복, 장승업 등 조선시대 위대한 화가들은 닭과 함게 병아리는 물론 맨드라미와 모란을 함께 넣어 그렸다.
닭이 제일 무서워 하는 시간은 아마도 삼복더위와 새신랑이 왔을 때일 것이다. 닭은 몸에 땀샘이 없어 체온은 피부, 털, 입, 볏 등을 통해 조절한다. 깃털로 덮여있어 더울 것 같은데도 여름나기에 성공하는 닭의 모습을 우리 조상네들이 놓칠 리가 없다. 농사일에 몸을 보신해야 하는 한여름날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는데 어느 장모가 씨암탉을 아낄 것인가!
한가지 의아한 것은 하루에 50회 교미하는 정력을 과시하는 '카사노바'인 수탉을 안 잡은 이유는 뭘까? 차라리 씨암탉을 잡아 달걀을 먹지 않을 수는 있지만,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장닭은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아니면 남자들이 혹시 카사노바가 될까봐 걱정이 되어 못내놓았다는 해학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여하튼 암탉이 살아남기 위해 너무나 샘을 냈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중종, 명종, 선조, 현종조에 여러 번 암탉이 수탉으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동서양 모두 머리가 아둔한 이를 빗대 ‘닭대가리’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조롱의 시대, 탄핵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문명의 조력자이자 우리에게 모든 걸 희생했던 동반자인 닭들이 AI로 인해 살처분당하고 있다. 닭은 우리 인간 때문에 날아다니지 못하게 되었으며, 우리 탐욕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 새가 되었다. AI와 관련한 닭 등에 대한 대량살처분을 나와 무관하거나 남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새해 설날을 맞이하여 치맥에 열광하여 집단 사육을 방관하고 조장한 우리의 탐욕을 바로보고 한번쯤 ‘반성’의 시간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닭그림을 완상했던 옛 선비들처럼 새해 첫날부터 반성을 통해 ‘신의’에 대한 바른 실천을 하다보면 복은 저절로 많이 짓게 될 듯 싶다. 사람 사는데 믿음이 최고다. 이런 시절인연속에서 국민모두가 올해는 염치를 알고 신뢰회복에 힘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