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제작 (주)외유내강 ·공동제작 Film K·제공 배급 필라멘트픽쳐스)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 분)가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 분)의 관계와 심리를 담고 있다.
효주는 자신이 눈여겨 보던 남학생 재하(이원근 분)와 혜영의 관계를 알게 되고 이길 수 있는 패를 쥐었다는 생각에 다 가진 혜영에게서 단 하나의 것을 빼앗으려 노력한다. 치정의 형태를 띤 이 작품은 그 화려한 겉면을 하나씩 거둘 때마다 더 치열하고 섬세한 속내를 발견할 수 있다.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혜영 같은 인상을 가진 김태용 감독이지만 실상 자신은 늘 효주의 입장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섬세하고 짙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영화 ‘거인’ 이후 차기작에 대해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여교사’는 어떤 이야기인가
일각에서는 남녀가 뒤바뀌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더라. 성차별적인 문제를 논하는데 오히려 이런 목소리들이 더 성차별적이라는 생각이다. 남자 선생과 여학생이었다면 다들 이렇게 발끈했을까 싶을 정도다
- 제 생각도 그렇다. 한국의 치정극들이 나이든 남자와 어린 여자의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저는 여성들이 도구처럼 이용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여성이 주체가 되었으면 했고 여성의 욕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거기에 우리 영화는 남자아이를 욕망의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사회가 이것을 관대하게 받아줄 만큼의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적 호불호는 예상하지만, 사회적 논란이 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치정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감정과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어린 친구들은 질투와 이들의 관계, 계급에 대해 이해를 못 하더라. 혜영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왜 효주가 내내 예민하고 냉랭한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30~40대들은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이야기를 따라가더라. 세대별로 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 너무 많아서…. 하하하. 걱정이 됐던 건 있다. (이)원근이에 대한 문제다. 원근이는 이 영화가 첫 데뷔작인데 드라마에서 보여준 캐릭터가 있어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보통 남학생과 여선생의 이야기라고 하면 우락부락하고 남자다운 학생을 떠올릴 텐데 원근이는 ‘밀크남’ 아닌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했는데 오히려 시사회 이후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최)우식이가 그렇듯 원근이도 이 영화로 재발견 되었으면 좋겠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린 소년의 이미지가 담긴 이원근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 저는 배우들의 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눈이 영화인 것이다. 제 영화는 그들의 눈을 따라가는 영화다. 효주는 분노의 눈을, 혜영은 천진난만한 눈을 가졌다면 재하의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길 바랐다. 재하가 등장하면 긴장감이 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거기에 원근이가 이제까지 소비한 이미지에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확실히 이원근의 눈에서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 한 번은 원근이와 술을 마셨는데 저한테 자기 팔찌를 채워주더라. ‘영화 끝날 때까지 차고 있으라’고 하는데 그 마음이 참 예뻤다. 그걸 모티브로 혜영과 재하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꿍꿍이가 있었더라도 어린아이의 그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원근 배우의 캐스팅이 어쩌면 모성애를 자극하는 노림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그런 지점도 확실히 있다. 이 두 여성이 모성애와 애정을 헷갈리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효주는 다 퍼주는 여자고 그 이면에는 모성애가 작용한다고 본다. 그게 재하라는 결핍된 아이와 붙었을 때 폭발하게 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충격과 공포에 시달리기를 바랐다. ‘우리가 저렇게 어린 애 때문에 이런 지경까지 몰리게 되었다고?’ 하는 부분들. 그래서 효주의 욕망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으면 바랐다.
‘다 퍼주는 여자’가 김하늘인 것도 이미지를 뒤집는 일 중 하나였나?
- 그것보다는 선생님에 대한 반전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 ‘로망스’로 국민 선생님이 된 김하늘 배우가 14년이 흘러 성숙하고 진보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등장했을 때의 충격이랄까. 저는 배우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들을 컨트롤 하는 일이 하고 싶어서 감독이 된 케이스다. 기교 보다는 배우의 얼굴에 집중한다. 최고의 미장셴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얼굴을 최고의 미장셴으로 끌어내는 건 확실하다
- 저는 예쁜 사람들. 그러니까 김하늘, 이원근, 유인영 같은 사람들이 확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보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변태 같을지도. 하하하.
김하늘이라는 배우를 경험해보니 어떻던가?
- 왜 김하늘이 김하늘인지 알겠더라. 중간중간 모호하고 입체적인 표정들로 영화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것들을 정리해버렸다. 김하늘이라는 배우가 작품을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 우리 영화는 심리를 다루는 영화라서 김하늘 선배님의 어떤 표정을 쓰느냐에 따라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다. 효주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니 효주의 컷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여배우들의 활약을 보면서 새삼 느꼈었다. 아,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었지 하고
- 여배우들이 연기로 주목받는 때가 왔으면 바랐었다. 그런데 딱 올해 ‘아가씨’ 김민희, ‘비밀은 없다’ 손예진, ‘미씽’ 공효진 등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재발견되고 있지 않나. 이런 분위기들이 반갑고 즐겁다. 우리 영화도 그 흐름에 한몫하길 바란다.
혜영의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 주변에 더러 있지 않나. 가질 거 다 가진 순수하고 착한 친구들. 제가 지방·흙수저·편부모 모임에 속해 있는데 그 친구들끼리도 농담으로 ‘강남 애들 치고 나쁜 애들 없지’하고 말하곤 한다. 다만 그들에게 모멸감을 느꼈던 건 아쉬울 게 없는 친구들인 만큼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사회에 대해서. 파격적인 소재와 설정이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품고 싶었던 것 같다.
자칫하면 뻔한 치정극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런 부분은 많이 덜어져서 안심이었다
- 아무래도 제가 젊은 감독이다 보니 통속적 장르에 대한 반항이나 저항이 있는 것 같다. ‘거인’도 그랬다. 성장영화 주인공은 왜 항상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 의문이었다. 영재(최우식 분)는 그런 운명과 맞서 싸우지 않나. ‘여교사’도 여자는 왜 항상 도구여야 하고 욕망이 없을까? 그 이미지를 뒤엎고 싶었다. 이 영화의 롤모델은 ‘해피엔드’였다. 세 명의 인물이 팽팽하게 자신의 욕망을 지키다가 파국을 얻는 이야기다.
개봉 후 ‘여교사’가 어떤 평가를 얻길 바라나?
- 이야깃거리나 화두를 남기길 바란다. 영화의 가치가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언론시사회를 앞두고 사실 엄청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후 리뷰들이나 반응을 보면서 ‘아, 그래도 내 의도가 전달되었구나' 생각했다. 작년에도 ‘비밀은 없다’, ‘곡성’ 같은 파격적인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그로 인해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수준이 넓어진 것 같다.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흥행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관심과 갈증도 생긴 것 같고. 우리 작품도 그 흐름에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