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지난 9월 일본 도쿄 시내 오다이바(お台場)에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이용자들이 몰려와 교통대란이 발생했다. '포켓몬 고'에 등장하는 희귀 몬스터 '라플라스'가 나타나 이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이 '포켓몬 고' 출시로 급격히 늘고, 관광지와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관련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스마트폰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먼저 정부청사를 방문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견학 중 스마트폰 게임을 금지했다. '포켓몬 고'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 출입금지 구역에 침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의 경우 안내 책자에 '청사 내에서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과 '포켓몬 고' 게임 이용을 금지합니다'라며 구체적인 게임명까지 명시했다. 세계문화유산이 몰려있는 교토(京都)는 '포켓몬 고와 보행 중 스마트폰 금지'라는 안내표지판을 내걸기도 했다.
호주 남부의 뉴사우스웨일스주는 25만 호주 달러(약 2억원)를 투입해 이달부터 시드시 시내 교차로 5곳 도로면에 빨간불이 켜지는 신호등을 매설,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신호를 볼 수 있게 했다.
미국 워싱턴과 서부 유타주의 유타밸리대학은 교내에 '보행 중 스마트폰 전용도로'를 만들었으며, 중국 충칭(重慶)시도 비슷한 전용도로를 설치했다. 충칭시는 중국 최초로 스마트폰 이용자만 다닐 수 있는 전용 도로를 만들어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중국에서는 하루종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용자들이 늘면서 '띠터우주(低頭族·머리 숙인 부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을 벌금으로 강력 제재하는 곳도 있다. 벨기에는 올 여름 경찰당국이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자에게 55유로(약 7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기 위해 검토 중이다. 하지만 보행 중 얼마 동안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위법인지에 대한 기준설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전 세계 안전당국이 공통적으로 보행 중 스마트폰 단속에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대부분의 국가가 교통표지판을 만들어 계몽하거나 전용도로를 만들어 사고를 줄이는 등 소극적인 대응만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홍종완 국민안전처 안전개선과장은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은 아직 초창기라 확실한 통계가 없어 정책방향이 명확하게 나올 상황은 아니다"라며 "정확한 실태가 나오기 전에 법으로 다스리면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과 교통사고가 스마트폰 이용으로 유발됐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통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5곳에 시범 설치된 교통표지판의 효과에 대한 경찰의 분석이 내년 1월에 완료되면 그 분석에 따라 다른 지자체로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