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이탈리아 최대 부실은행을 꼽히는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세이나(BMPS)가 유럽중앙은행(ECB)에 자본 확충을 실시할 수 있는 기한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파이낸셜타임즈(FT)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하여 8일 보도했다.
지난 7월 유럽 금융당국이 역내 51개 은행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무건전성 심사에서 꼴찌를 차지한 BMPS는 올해 안에 50억 유로의 자본을 확충하기로 했었다.
만약 ECB가 기한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민간 차원의 자본 확충이 어려운 만큼 앞으로 며칠 안에 이탈리아는 정부 차원의 구제안을 실시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새로운 EU 구제금융 법규에 따라 채권 투자자들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MPS는 ECB에 보내는 서한을 통해 지난 4일 국민투표에서 마테오 렌치 총리가 추진한 이탈리아 개헌안이 부결된 데 따른 정정 불안으로 새로운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자본 확충을 위한 민간 투자자들과의 협상이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MPS는 렌치 총리의 지원 속에서 카타르 국부펀드로부터 최대 20억 유로 규모의 자본을 투자받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타르 펀드로서는 개헌안 부결로 렌치 총리가 사임한 가운데 새로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알지 못한 채 부실 은행에 거액을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한 FT는 소식통들은 인용해 미국의 헤지펀드와 같은 잠재적 투자자들도 협상에 앞서 새 정부 수립을 우선 조건으로 내걸고 있으며 총선 일정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ECB는 이르면 8일 BMPS의 기한 연장 요구를 검토할 예정이다. 다만 ECB로서는 어떤 결정이건 선뜻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자본 확충 기한을 연장해줄 경우 2014년과 올해 두 차례나 재무건전성 심사 기준에 미달한 BMPS을 봐주고 있다는 평가 속에서 금융 감독기구로서의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
반대로 ECB가 자본 확충 기한을 연장하지 않아 이탈리아 은행권의 뇌관인 BMPS를 시작으로 은행권 패닉이 발생할 경우 ECB가 문제를 키웠다는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BMPS 이사회 논의에 참석한 한 소식통은 FT에 “ECB가 기한을 연장해주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ECB에 있다. 폭발 장치를 터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CB 측에서는 이탈리아의 개헌안 부결 이후에도 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어 새로운 정부 하에서 BMPS 상황이 해결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줄 수 있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전했다. 다만 ECB는 BMPS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정부 차원의 구제금융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