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직 고위관료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공백 사태를 뿌리 깊은 관치(官治)경제의 폐해로 봤다.
실제 각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들은 최근 들어 최순실 연루설에 휘말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각종 내년 정책을 준비해야 시점이지만 행여나 ‘최순실표’란 딱지가 붙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때문에 공무원 사이에서는 책임져야 하는 일에 손을 대지 않는 '변양호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지시도, 책임 질 사람도 없는 틈을 타 소위 ‘나 몰라라’는 보신주의가 고개를 들며 내년도 정책은 오리무중이 돼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내년도 예산안은 타결됐지만, 내년 경제정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유일호 현행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내정자의 동거가 한달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부총리 인사청문회는 언제 열릴지 기약이 없다.
실무적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해야 할 최상목 1차관은 '최순실 게이트' 연루설에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최근 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에도 최순실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며 기재부는 검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면세점 특혜 외에도 문화·체육분야 등 이른바 ‘최순실표’ 정책이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마저 제기되며 내년 경제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요즘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무엇인가를 선뜻 내놓기가 꺼려지는 상황이 답답하고, 빨리 수습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사회가 동요하며 공직 기강도 해이해 졌다. 고용노동부 1급 공무원은 SNS를 통해 부하 여직원을 성희롱한 사실이 밝혀져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국정 혼란에 정책은 실종되고, 책임 질 사람도 없는 현 상황을 개선할 돌파구로 관치경제 청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까지 공직사회가 청와대 눈치를 보며 수동적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자율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전직 경제수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 전체의 기강과 규율이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한 진념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과거의 공직자들은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지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며 "공직자들이 눈치를 보기보다 나라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공직자들은) 주어진 권한과 책임내에서 소신있게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