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실체적 진실 규명이냐, 특별검사(특검)의 역설이냐.’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인 ‘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규명할 특검 공포안이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성립 여부가 최대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의 정식 명칭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이다.
그러나 특검이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청와대가 ‘특검의 중립성’을 언급하면서 시간 끌기를 통한 ‘뭉개기 전략’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특검이 박 대통령의 ‘뇌물죄’ 등을 밝히지 못할 경우 거센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지난 1999년 도입된 특검은 앞서 11번의 특검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른바 ‘특검의 역설’에 빠진 것이다.
◆도래한 ‘특검 정국’…궁지 몰린 朴대통령
특검의 최대 쟁점은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및 뇌물 혐의 적용이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박 대통령을 공동정범으로 판단하고 현직 대통령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피의자로 입건했지만, 최순실씨(60) 등의 공소장에 뇌물 혐의를 제외했다. 내달 예정된 특검과 동시에 막 내리는 검찰도 막판 뇌물죄 구성요건 성립 퍼즐 맞추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판은 깔렸다. 특검법 제2조 제15호는 ‘1~14호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범위를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했다. 의지만 있다면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7) 등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고리로 삼성 등에 수십억 원의 출연을 강요한 주범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7대 그룹 총수를 독대한 자리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및 출연금 모금 등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최 씨 등의 주요 혐의 범죄 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적시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최 씨나 안 전 수석 등도 일제히 “대통령이 지시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선의로 한 일”이라며 방어막을 친 상태다.
◆靑 증거인멸 시 ‘증거인멸 교사죄’ 성립
뇌물죄 등의 구성요건은 ‘대가성’, ‘직무관련성’이다. 대통령의 직무 관련성은 민간인인 최 씨나 특정 직무에 한정된 안 전 수석보다 넓다. 이 때문에 특검은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에 따른 대가성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박 대통령이 세 차례의 대국민담화에서 대기업 등의 출연금을 ‘선의로 한 일’로 선 그은 것도 대가성 입증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보는 견해가 대다수다.
눈여겨볼 판례가 있다. 지난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포괄적 뇌물죄’다. 당시 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2205억원과 2629억원의 추징금을 확정하면서 이 법리를 적용했다.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대가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최 씨와 안 전 수석을 통해 걷은 재단 출연금이 최태원 SK 회장 사면 의혹을 비롯해 △부영그룹 세무조사 △롯데그룹 검찰수사 등 각 기업의 현안 해결 청탁과 기금 모금과의 연관성이 직간접적으로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의 뇌물죄 성립은 시간문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밖에도 △공무상 기밀누설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직권남용 △특별범죄가중처벌 등의 칼날도 박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검찰이 최 씨 등을 기소하면서 증거인멸 가능성을 적시, 일각에선 특검도 사실상 증거 없는 ‘진공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이에 대해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증거인멸 교사죄’라는 법적 장치가 있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다만 “특검 개시와 동시에 검찰 수사를 종결하지 말고, 투 트랙으로 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며 “형사 소추의 문제는 검찰이, 정치적인 책임인 탄핵 등의 문제는 특검으로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편 특검 후보자 추천자로는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시환·김지형 전 대법관, 국민의당에선 이홍훈 전 대법관과 문성우·명동성·소병철·박영관 변호사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파견검사로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 과정에서 항명 논란을 일으킨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가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