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라디오 시대①] 왜 지금도 라디오를 말하나

2016-11-11 19:46
  • 글자크기 설정

[사진='여성시대', '별이 빛나는 밤에', '파워FM', '비포 선라이즈' 공식 홈페이지 캡처]


아주경제 정진영·김은하 기자 = 즐기고 볼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 라디오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이미 너무 새삼스러운 일입니다. 영국 밴드 더 버글스가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고 외친 것이 이미 1980년이니까요. 하지만 끊임없는 위기론에도 라디오는 끊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당신과 거리를 좁히고 보이는 라디오, 팟캐스트와 같은 주문형 방송으로 다각적 접근을 이끌어 내면서 라디오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라디오 시대!"라고 외치는 이유입니다. 뒤숭숭한 시국에 절망했나요? 고단한 삶에 지쳤나요?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를 향해 울리"니까요(신승훈의 노래 '라디오를 켜 봐요').

라디오가 또 위기를 맞았다. 최근 경북도와 영국 정부, 울릉군, 영국 웨스트필드 스포츠카, 포스코ICT는 울릉도 자율주행차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무인자동차가 경북울릉군 해안변 섬일주도로를 달리게 하기 위함이다. 자동차가 알아서 도로의 상황을 파악해 자동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의 도입은 곧 운전자의 손과 발이 자유로워졌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귀만' 자유로웠던 운전자들은 라디오의 주시청층이었다.
국내 라디오의 시작은 일제 식민지 시절이었다. 1924년 11월 조선총독부 체신청이 무선시험방송을 실시하면서 라디오 전파가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발사됐다. 일제 식민지 때는 식민통치의 도구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국가기구로 기능하던 라디오는 1954년 국내 최초 민간방송인 기독교방송(CBS)이 개국하면서 오락 매체로 전성기를 이끌었다. 1970년대 들어 TV 수상기 보급이 확산되면서 라디오 위기론이 대두됐다.

1981년 미국 케이블 채널 MTV가 개국방송 첫 노래로 더 버글스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선택한 것은 상징적이다. 볼거리가 쏟아지는 시대, 오직 청각에 의존해야하는 라디오는 분명 한계점이 있어 보이지만 혹자는 "그것이 라디오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2011년부터 SBS 파워FM '펀펀 투데이'를 진행하다 지난달부터 '파워FM'으로 청취자와 만나고 있는 개그맨 김영철은 "편집, 배경음악, 자막으로 포장할 수 있는 TV와 달리 라디오는 어떠한 후반 작업도 거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청취자에게 간다. 치장 없는 민낯으로 대중과 소통한다"면서 "언젠가는 음악이 나가는 동안 PD와 작은 말다툼을 하고 방송을 이어가는데, 청취자가 '음악 나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목소리가 다운돼 걱정된다'고 문자를 보냈더라. 목소리에 담긴 작은 감정까지 주고받는 것, 그 미묘함이 라디오를 고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라디오는 늘 그 시간, 그곳을 지킨다.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서. MBC 김현수 PD는 1975년에 시작돼 마흔 살이 된 MBC 표준FM '여성시대'의 수장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당시 경상북도 문경시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매일 손편지를 보내주셨다. 일일달력을 찢어서 그 뒤에 '오늘은 아픈 부인을 돌봤다', '오늘은 밭에 가봤더니 작물이 얼마만큼 자랐더라' 같은 소소한 일상을 적어주셨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맡고 있는 지금도 문득문득 그 할아버지가 무탈하신지 궁금하다"고 했다.

11월 현재 '여성시대'를 맡고 있는 박정욱 PD는 청취자가 보내준 사연을 듣다 눈물을 흘린 일이 있다. "신춘편지쇼 2등한 분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 사연을 DJ 서경석이 읽는데 도중에 울음이 올라온 거다. 그러다 결국 북받쳐 올라 사연 읽기를 멈췄고 나머지를 DJ 양희은이 마무리했다. 하필 내가 그날 선곡을 김연우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한 거다. 노래가 나가는데 나도 내 감정이 감당이 안 되더라. '노래 끝나고 방송을 어떻게 하지' 싶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진심으로 청취자와 소통하는 것은 DJ도 마찬가지다. 박정욱 PD는 "18년 동안 '여성시대'를 지키고 있는 양희은은 방송 초반에는 입버릇처럼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했다고 한다. 사연에 몰입해 그 무게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방송을 마치고 정처 없이 걸었다더라"고 전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한 자 한 자 눌러쓴 손편지도, 직접 만든 엽서도 크게 줄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듯 짤막한 사연이 주를 이룬단다. 라디오도 MBC는 '미니', SBS는 '고릴라', KBS는 '콩'이라는 플레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모바일 기기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인터넷 라디오 플레이어를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방송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듯 짧은 길이의 사연을 수시로 올리며 '지금'을 재빠르게 공유할 수 있다.

김현수 PD는 "1990년대 초반까진 예쁜 엽서전이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그만큼 라디오를 하는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는 뜻일 거다. 아쉽긴 하지만 새로운 모바일 환경에 맞춰서 라디오는 진보하고 있다. 억지로 행사를 위한 행사를 하는 것도 무리수일 수 있다. 제작년엔 디지털 예쁜 엽서전을 열었다"며 이런 시대에 맞게 라디오 역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디오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등장으로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도 라디오 프로그램 종사자는 라디오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허일후 MBC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했다. "다양한 채널이 쏟아지는 지금도 일대일로 교감하는 매체는 라디오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라디오를 할 때는 절대 '여러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라디오를 할 때만큼은 난 '당신과 소통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