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뭘까?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면서, 영화 ‘친구’의 배경이자, 부산 특유의 다소 거칠고 무뚝뚝한 사투리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부산에 대한 위와 같은 상념도 있지만, 부산은 6.25전쟁 때 전사한 UN군 전사자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세계유일의 UN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고지전’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는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잘 그려져 있고, 우리 6.25참전유공자 분들의 희생과 헌신 또한 잘 그려져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지금처럼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TV를 보고, 친구를 만나면서 술 한 잔 기울 수 있는 것도 ‘그들’의 ‘흔적’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그들’은 6.25참전유공자를 의미하고, 그 ‘흔적’은 적국과의 전투를 통해 피 흘려 차지한 우리나라의 영토와 비참한 환경에서 나라를 위해 싸운 그들의 희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흔적’은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 가고 있으며, 세대가 지날수록 그 정도는 심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디어와 역사 교육을 통해 그 ‘흔적’을 계속 상기시켜야 하며, 그것을 통해 이 땅에 6.25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사실 우리는 미디어나 역사 교육을 통해 6.25참전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은 익히 들을 수 있지만, UN군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UN군 58,000여 명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는 역사책에 UN군이 몇 명 참전하여 몇 명 희생되었다고 쓰인 사실을 알고 있고, 책 안에서의 ‘활자’로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지,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의미’와 ‘공감’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각종 기념식, 추모식 등을 하는 이유는 사회 안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로 각자 인식하고 있는 사실을 ‘의미’로서 ‘공감’하고 그러한 ‘공감’을 통해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는 11월 11일 11시에는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UN군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념하는 ‘TURN TOWARD BUSAN’이라는 캠페인이 열린다.
이 캠페인을 통해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을 마음으로 느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가 그들의 ‘흔적’으로 인해 편하게 숨 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느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주변인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는 이유도 나의 삶의 ‘흔적’을 누군가에게 남기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인간의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타국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UN군 전사자를 위해 추모하는 캠페인인 ‘TURN TOWARD BUSAN’은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다. 11월 11일 11시 그날 그 시, 우리 모두 그들의 ‘흔적’을 위해 묵념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