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취업준비생으로 살아온 농대 출신 백 모(36세)씨가 취업을 장려하는 정부의 권유에 내놓은 답이다. 미래 농사꾼을 꿈꾸며 관련 학과를 전공한 졸업생들이 사회적인 '농업홀대' 인식이나 정책적인 뒷받침이 없어 농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소기업 기피현상도 심각하다. 백 씨를 비롯한 일반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에만 목을 매면서 인력 양극화는 극대화하고 있다.
◆구직자들 "농촌, 중소기업엔 좋은 일자리가 없다"
농고와 농대 졸업생 가운데 실제 농사를 짓는 졸업생는 각각 1.4%, 6.1%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농업회사법인 등 농업 분야에 진출하는 수는 33.2%, 31.1%이다. 나머지 70%에 육박하는 졸업생들은 다른 분야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들이 농촌에서 일하지 않는 이유는 농촌·농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자영농으로 자립하기까지 충분한 현금소득·영농기반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청년들이 중소기업 일자리를 기피하는 이유는 좋은 일자리가 적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근로자 평균임금은 대기업 대비 62%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시 근로자가 300인 이상인 대기업의 근로자 임금은 월 평균 501만6705원으로 전년보다 3.9% 올랐지만, 300인 미만인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은 월 평균 311만283원으로 3.4% 상승에 그쳤다.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청년 구직자들이 대기업에만 몰리는 현실이 청년들의 눈높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 구인자들도 답답하건 매한가지다. 반월·시화공단 등의 중소업체 인사담당자들은 청년 구직자들을 만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인사 담당자는 “애써 채용한 신입사원들도 대기업 공채기간에 빠져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력을 양성하면 대기업에 빼앗기는 기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농업에 대한 국민들 인식 개선이 먼저
전문가들은 중소기업과 농업부문의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힘을 모은다. 예컨대, 농업·농촌을 천시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생명산업으로 불리는 '농업'을 1등 산업으로 꼽는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농업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진다.
농업강국 스페인에서는 젊은 농업인을 위한 정책이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농업인을 꿈꾸는 청년이 영농계획서 등을 제출하면 정부는 3년간 약 1억원의 자금 등 아낌 없는 영농지원을 한다.
우리나라도 청년 248명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으로 농산업 창업 지원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그러나 청년층 유입을 위한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자영농으로 자립하기까지 턱없이 부족한 자금을 지원받기 때문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39세 이하 신규 농산업 창업자 혹은 창업 예정자(영농경력 3년 이내 포함)는 매월 80만원씩 연간 1000만원을 지원 받는다. 스페인의 청년 지원금과 비교하면 연간 3분의1 에도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농업부문과 중소기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미복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농업은 국민으로부터 우대받지 못한 산업으로 전락한지 오래"라며 "농촌·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책적인 홍보와 청년층 유입을 위한 젊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고려대 교수는 "청년 구직자들에게 중소기업의 인식을 물어보면 낮은 연봉, 부실한 복리후생 등을 꼽는다"라며 "특히 친구나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호하는 게 된 이유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금의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단순한 자금 지원은 청년구직자를 소모품이라는 인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기업과 청년 모두 상생할 수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