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군득·노승길 기자 = 우리나라는 15년째 초저출산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정부가 10년째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피부로 느끼는 체감은 갈수록 떨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선인 1.3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1.24명 수준이다.
얇아진 청년층은 한국경제의 허리가 부실해졌다는 방증이다. 가뜩이나 내년부터 생산인구가 감소하는 시점에서 청년층 부재는 경제 전반에 ‘불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다가올 공산이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43만8400명에 그쳤다. 합계출산율은 지난 2001년 1.297명으로 떨어진 이후 15년 연속 OECD 평균치인 1.3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이 사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00만명에 육박하며 고령화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일찌감치 고령사회를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첫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2006년에 나왔다. 일본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던 시기인 동시에 장기불황의 시발점이 됐던 해다.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은 2006년을 시작으로 4개년 단위로 발표됐다. 지난해 12월 제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은 오는 2020년까지 진행된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80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하다. 3차 기본계획도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각종 양육수당, 청년대책을 내놔도 경직된 사회구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책 초점이 자녀가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 양육지원 정책에 집중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아이를 낳기 위한 선제조건인 결혼을 하게 만드는 지원책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차 기본계획(2011~2015) 집행기에 소요된 저출산 관련 예산 37조7200억원 중 34조8500억원(92%)이 출산·양육정책에 투입된 반면, 고용정책 예산은 2조6900억원에 불과했다.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 역시 일자리·주거 등 만혼의 구조적 원인해결과 맞춤형 정책 수립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수장들도 향후 한국경제 변수에 대해 저출산·고령화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청년층이 사회적 중심으로 성장해야 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도 안 되는 성장률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고령화가 초유의 속도로 진행되는 국가가 계속 2.8%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저출산·고령화 문제 대응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정책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내년 상반기 연구보고서 발간을 목표로 현재 경제연구원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연구 중이다.
이 총재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해 정권이 바뀌어도 장기적 플랜을 계속 밀고 가는 모멘텀을 만들고 싶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인구정책에 실패한 일본과 이탈리아…불황의 시작
가까운 일본의 경우 200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복지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 결과 20년 장기 불황이라는 늪에 빠졌다. 경제는 탄력을 잃고,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며 악순환이 반복됐다.
인구정책은 단순히 사회적 시선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는 부분을 인식시켜주는 단적인 사례인 셈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실버사업을 육성하는 등 의욕적인 인구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노인들은 현금을 금고 속에 넣고 시장에 풀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은 현금 유동성이 나빠지면서 경제 순환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경제도 일본과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그나마 한국경제는 일본처럼 초고령사회 진입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 노인정책 위주에서 벗어나 한국사회가 청년 중심으로 움직이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황금세대를 주도했던 이들이 고령화에 접어들자 청년들은 노인복지에 내는 세금 등 각종 빚에 시달리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급기야 청년들이 국가를 등지고 해외로 취업하는 역전현상이 수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국회 저출산·고령화 대책특별위원회 나경원 위원장은 “우리나라 출생인구는 여전히 1년에 40만명 내외”라며 “지난 10년간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효과가 있는지 모두가 의문스러워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 역시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80조원, 고령화 대책까지 하면 150조원을 쏟아부었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총괄하는 부처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