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특히, 엘리엇이 이번 삼성전자 지배구조개편 요구안을 한국 내에 불고 있는 재벌기업에 대한 반기업 정서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미 일부 해외 투자자들이 엘리엇의 요구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일반 투자자와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세력들도 가세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 엘리엇의 의도대로 끌려갈 경우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보다 더 심각한 사태에 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엘리엇의 요구 사항은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하고, 지주회사는 삼성물산과 합병 △지주회사의 나스닥 상장 △지주회사 이사회에 사외이사 3명 추가 △30조원 또는 보통주 1주당 24만5000원 규모의 특별 현금 배당 실시 △사업회사의 잉여현금흐름의 75% 주주들에게 지속 환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요구안 공개 후 삼성전자 주가는 사상 최고가인 주당 170만원을 넘어섰고 삼성물산 주가도 상승세를 기록하는 등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불쑥 반기를 들면서 법정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대공세를 펼치다 여론의 철폐를 맞았던 엘리엇은 1년도 안 돼 다시 한국에 모습을 드러내기에 부담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 경영진의 업적을 칭찬하고, 지배구조 개편으로 고심하는 삼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우호적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연착륙에 성공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영국 3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로 삼성전자 지분율이 0.12%인 헨더슨글로벌인베스터스는 엘리엇에 동조의 뜻을 밝혔으며, 삼성전자 지분 0.8%를 보유한 네덜란드 APG펀드도 “엘리엇의 요구는 무리한 수준이 아닌 상식선에 가깝다”며 삼성전자에 수용을 촉구하는 등 외국 투자자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엘리엇은 유화책을 앞세워 서서히 압박해 나아가겠지만, 삼성전자가 자신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외국계 주주들을 규합해 주총 등에서 실력 행사에 나서는 등 본색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수익만을 쫓는 대표적 ‘벌처(Vulture)펀드’인 엘리엇이 관용을 베풀리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고민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배경은 엘리엇의 요구가 삼성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국내 정치권과 여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창섭 싱가포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과 엘리엇의 대결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국제금융자본은 외국 정부까지 동원해 한국 재벌을 ‘소수주주’를 무시하고 ‘오너’들이 전횡하는 전근대적 조직이라고 맹공했는 데, 당시 국내 많은 지식인들이나 정책 담당자들도 여기에 동조했다”면서 “재벌이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라고 생각하고 외환위기를 재벌개혁의 호기로 보았고, 그 결과 반(反)재벌 공동전선이 형성됐다. 그 이익을 국제금융자본이 대거 챙겨 갔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 전환을 추진 중인 삼성으로서는 엘리엇을 비롯한 주주들과 대화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솔루션을 찾아내는 노력을 하면서 그 솔루션이 국내 여론의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는 이중의 고민을 안게 됐다”면서 “삼성의 고민은 헤지펀드의 공세에 노출된 국내 모든 대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이자 우리 정부도 대응책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