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전세계 크루즈 시장이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주도와 부산, 인천 등 기항지로 매력이 크다. 프린세스 크루즈 등 주요 메이저 선사가 아시아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곳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현 롯데관광개발 사장은 아시아 크루즈 시장이 향후 새로운 가치창출의 핵심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을 중심으로 크루즈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 앞으로 크루즈 관광객도 급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백 사장은 지난해 9월 취임 후 크루즈 산업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내년부터 크루즈 전세선이 속초항에 입항하는 계약도 성사시켰다.
백 사장은 “지난 2009년 국내에 기항한 크루즈 관광객은 2만명이 채 안됐다. 그만큼 국내 크루즈 시장이 열악했다는 방증”이라며 “그런데 2014년에 104만명으로 17배가 늘어났다. 작년에 메르스 여파로 관광객이 줄었지만, 올해는 기대된다. 150만명 이상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 3면이 바다인 한국…크루즈 산업이 필요하다
백 사장은 크루즈 관광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의 종적 자체에서 크루즈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대표이사로 취임할 당시에도 크루즈에 대한 관광상품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취임 전부터 크루즈 대중화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 상승과 외국 크루즈 선사의 한국유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 수가 크게 늘었고, 이를 시발점으로 정부에서도 크루즈산업 육성을 시작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백 사장은 “2010년에 첫 차터(전세선박 계약)를 했는데, 이는 중국보다 앞선 것이다. 차터는 운영리스의 일종이다. 주로 선박이나 항공기 등을 임대하는 리스계약으로 중도해약이 가능하며, 유지·보수관리는 임대자의 책임하에 이뤄진다.
백 사장이 중국보다 앞서 차터를 진행한 이유는 오는 2020년에 관광객 2000만명을 달성하기 위해 비행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3면이 바다인데 해양산업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2000만명의 관광객 달성은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이 차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국민에게 해외 나가서 크루즈를 타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달 수 있도록하면 좋겠다는 사명감때문에 크루즈 산업을 시작했다”며 “그런데 배를 정박할 곳이 없었다. 청와대에 가서 부두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인천북항이 2012년에 허가를 받고 나서 외국 배들이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열악한 국내 크루즈 시장은 해양수산부가 2013년부터 크루즈 육성계획을 발표하며 급물살을 탔다. 2014년에는 처음으로 크루즈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동안 제주항은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와도 접안시설 이외에 이렇다 할 터미널이 없었는데 지난해 제주항 국제터미널이 갖춰지며 올해 목표한 150만명 달성도 순항 중이다.
백 사장은 “제주도는 아시아에서 입항하기 수월한 곳 중 하나다. 국내 크루즈 산업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매력을 갖췄다”며 “올해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이 제주이고, 앞으로도 제주가 될 것이다. 올해 크루즈 150만명 달성이 가능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 “국적 크루즈 필요하지만, 서두르지 말아야”
백 사장의 궁극적 목표는 국적 크루즈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국적 크루즈를 유치하는 부분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아직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배의 규모나 환경에서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국적 크루즈가 운행한 경험이 있다. 하모니 크루즈가 있었는데 2년만에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접었다. 외국 선사들의 경쟁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힘든 점도 조기에 하차한 이유로 꼽힌다.
백 사장은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에 서로 경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안된다. 국적 크루즈 선사 보호에도 한계가 있다”며 “외국 선사들의 경쟁력이 대단해 같이 경쟁하기 어렵다. 그래서 생각한 게 연안 크루즈”라고 밝혔다.
외국처럼 멀리 다니려면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배 한척이 7000억원을 넘는데, 중고 선박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냉정하게 봤을 때 기업은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야 한다. 연안 크루즈, 플라잉 크루즈 등 이런 부분이 잘 세팅되면 외국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연안 크루즈를 타고 가는 것도 승산있다고 본다”며 “이렇게 시작하며 조금씩 인지도를 높이면 지역경제도 살고, 국가 브랜드도 높아지고. 이후 대형 크루즈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크루즈 환경이 주변국과 비교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3년 사이에 국내 크루즈 산업이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은 고무적이다. 크루즈 아웃바운드(내국인 관광객)가 적음에도 인바운드(외국인 관광객)가 늘어난 것은 지리적 장점과 함께 정부에서 인프라 구축 노력을 많이 했다는 방증이다.
아쉬운 부분은 여전히 주변 환경정비가 생각만큼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10~20년을 내다보고 해야하는데, 단기적 대책만 나오는 것도 기업인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 셈이다.
그는 “터미널 시설도 외국사례를 검토한 이후, 제대로 해야 한다. 너무 근시안적이다. 인천은 손님을 컨테이너에 쌓아놓거나 내리기도 한다. 부산도 대교 때문에 7만톤 이상 들어오지도 못한다”며 “크루즈도 교통수단인데 비행기처럼 시설좋게 해야 한다. 하루빨리 예산을 만들어 좋은 인프라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 저가상품은 한국 이미지에 마이너스…확실한 대책 필요
국내 크루즈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크루즈 저가 상품이 난무하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해결방안을 찾지 않으면 겨우 살린 크루즈 붐이 한순간에 식어버릴 수 있다.
백 사장은 “크루즈 인구가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인데. 품질저하 논란이 많다.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일본은 총리실에서 산하기구를 두고,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여러 조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여행사에 권한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크루즈선사가 직접 한국의 여행상품을 팔 수 없다. 여행사를 통해 한국 상품을 팔다보니 여행사에서 덤핑을 해도 대응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그는 “크루즈시장이 아시아지역으로 움직이고 있다. 프린세스도 13만톤 규모의 선박이 들어올 채비를 갖췄다. 내년에는 더 많이 들어올 계획”이라며 “메이저 선사들이 덤핑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는데. 기항지 상품으로 덤핑을 하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정부가 중국 당국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연안크루즈 통해 노하우 쌓는다
우리나라 크루즈 시장은 단기간 급성장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버겁다. 특히 외국 대형 선사와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프린세스 크루즈만 해도 60년이 넘었다. 10만톤 이상 선박도 16척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적 크루즈를 유치해도 고작 6~7만톤이 전부다. 산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해결해야할 문제가 너무 많다.
연안크루즈 사업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노하우를 쌓는데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는 게 백 사장의 생각이다. 우리가 가진 것을 특화하는 부분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백 사장이 구상한 연안 크루즈는 우리나라 바다를 다니는 상품이다. 속초에서 시작해 울릉도 를 경유하고, 이어 일본 대마도와 제주도, 백령도를 들러 인천으로 돌아오는 것이 대표적 상품이다.
백 사장은 “그리스 산토리니 섬 등 연계 코스도 상당히 호응이 좋다. 지금 당장 대형 선사와 붙기 어렵다면 다양한 경로를 찾아야 한다”며 “속초 양양공항, 인천 공항 등 공항과 연계하면 지방자치단체까지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 선사들은 60~70년 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교육받은 직원을 배출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그걸 이겨내기 위해 특화된 부분부터 시작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내국 관광객 수요가 10만명 이상됐을 때 크루즈 국적선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백현 롯데관광개발 사장은
경희대 대학원 관광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롯데관광개발 해외영업본부 본부장, NH여행 대표이사, 서울시 관광진흥위원회 위원, 경희대 관광대학원 관관경영학과 겸임교수, 롯데관광개발 총괄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