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정부가 25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의 골자는 주택시장의 공급 물량을 줄여 주택 담보대출 급증세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금융규제 중심의 가계부채 해법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아예 주택공급 물량 조절에 나선 것이다.
◆ 1250조원 넘어선 가계부채…연내 1300조원까지 늘어날 수도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는 수많은 정부 대책에도 잡히지 않는 가계부채 급증세를 그대로 보여줬다.
2분기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이 1257조3000억원에 달한다. 당연히 역대 최고다. 지난 1분기 말 1223조7000억원보다 33조6000억원(2.7%)이나 증가했다.
2분기 가계신용 증가액은 1분기 증가액 20조6000억원보다 13조원이나 늘어난 것이며, 작년 4분기 38조2000억원에 이어 역대 두번째다.
증가 속도도 가팔라 이 추세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연내 13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부채의 질과 양이 모두 나빠졌다는 점이다. 올해 2분기에도 은행권의 대출수요가 비은행권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가계대출 증가액 32조9000억원 가운데 예금은행 대출은 17조4000억원이고 나머지 15조5000억원은 비은행권에서 빌린 금액이다.
특히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10조40000억원으로 작년 2분기(5조원)의 2배를 뛰어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의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올해 2월 수도권에 이어 전국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의 대출 증가세는 둔화됐지만, 비은행권 대출은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린다. 어마어마한 가계부채 총량만으로 민간소비를 위축시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1분기 이후 최저치다.
특히 가구의 소득 증가율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부채 증가율은 서민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 주택 공급 줄여 아파트 집단대출 막는다…발상의 전환?
이번 가계부채 정책의 주요 표적은 아파트 집단대출이다.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23조6000억원 중 집단대출(11조6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9.2%에 달했다. 지난해 말 비중은 12.4%였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며 신규 분양물량이 쏟아지자 집단대출이 급증한 것이다.
집단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되자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택지 공급 물량을 감축하고, 분양보증 예비심사 제도 도입, 신규 사업 인허가 조절 등 주택공급 물량 조절 대책을 내놨다.
주택공급에 손을 대지 않고 대출을 조이는 것만으로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를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금과 같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 '주택 공급과잉→집단대출 증가세 확대와 주택시장 하방 리스크 증가→가계부채 건전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보증을 각각 2건씩, 1인당 총 4건의 보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총합 2건으로 제한한다. 무분별한 분양권 투자를 막기 위한 조치다.
집단대출 보증율도 기존 100% 보증에서 90% 부분 보증제를 도입하고, 차입자의 소득 확인과 사업장 현장 조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제한이 없었던 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 건수를 1인당 2건 이내로 제한하고 보증 한도 역시 수도권과 광역시는 6억원, 지방은 3억원으로 제한한지 두 달 만에 나온 추가 대책이다.
◆ 근본대책 없어 결국은 집값 띄우기 지적도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을 지나치게 위축시키지 않는 선에서 가계부채 대책이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성수 건국대 교수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집단대출의 출발점이 되는 분양보증 심사를 엄격히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을 위축시키지는 않는 방향으로 규제가 유연하게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2월 도입된 은행권 가계대출 규제의 효과를 확인할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건설경기가 꺾일 때 대출 규제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면 주거안정보다 집값 띄우기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가계부채 대책도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좋은 말로 포장한 주택 가격 방어로 보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