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책은 장식용이 아니라 내적인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북디자이너는 문화, 일상, 영화, 연극 등 다방면의 지식을 잘 아는 '감독'이 되어야 합니다."
중국 북디자인 1세대로 불리는 뤼징런(吕敬人·69) 뤼징런설계공작실 대표 겸 페이퍼로그 인스티튜트 총괄감독은 지난 4일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뤼징런 대표는 오는 10월 1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파주북소리 2016'의 특별전 '전통과 창조 - 뤼징런과 중국 근현대 북디자인'(9월 24일부터 10월 23일까지)을 앞두고 제자 27명과 함께 출판도시를 찾았다.
뤼징런은 "이때의 경험은 내 예술적 재능을 싹틔우는 계기가 됐다"며 "동양적 온정을 담은 디자인, 설득력 있는 글의 기본을 다진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중국이 개방된 뒤 일본 출판사 고단샤의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일본 디자인을 연구했으며, 귀국 후에는 중국 출판계의 급속한 변화 과정 속에서 전통 제본술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내며 중국 북디자인의 일인자로 우뚝 섰다.
사실 그가 파주출판단지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05년 동아시아출판인포럼 참석을 시작으로 일년에 1~2회씩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10여 년 전 처음 접한 한국의 혁신적 출판 디자인과 열정적인 한국 출판인들의 모습 그리고 이상적인 출판단지의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80년대 후반부터 출판인들의 노력으로 출판도시가 조성돼 온 것을 지켜봤다는 그는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인 김언호 한길사 대표와 전 이사장인 이기웅 열화당 대표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에 대한 이념과 꿈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김 이사장은 세계 각국의 서점을 취재하는 등 책에 대한 열의가 남다르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뤼징런은 파주출판도시를 '책의 보물섬'이라 일컫는다. 내적으로는 출판인들의 노력과 사랑이 가슴 깊이 느껴지고, 외적으로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제자들을 매년 이곳에 데려오는 것은 책에 대한 정신, 도전, 열정 등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곳에도 이런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북디자인에 있어 서구의 강한 비주얼보다 아시아만의 것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번 특별전의 주제도 '전통과 창조'로 잡았다. 그는 "'전통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뜻과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현대적 언어로 창조하자'는 의미를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디지털 시대에서의 책의 의미를 새롭게 짚어냈다. "디지털은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약화시키지만, 반대로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책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을 개성 넘치는 책 제작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뤼징런은 자신의 북디자인 방법론을 '총체적 디자인'으로 명명한다. 책을 본문 구성부터 표지까지 총체적 구조로 파악하고, 물성에 기초해 건축적인 사고로 접근한다는 의미다. 그는 "공예의 정교함과 재료의 아름다움이 잘 어우러져야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며 "예전엔 표지만 디자인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타이포그래피, 바인딩 등 책 전체를 구성한다. 그래서 '북디자인'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작은 바람이 있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갈수록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 간 소통이 줄어드는데 책은 이를 활발하게 해주는 매체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의미 있는 책을 북디자인을 통해 구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