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국회가 11일부터 2015 회계연도 결산심사에 돌입했으나, 본분은 뒤로한 채 정부 혼쭐내기에 열을 올렸다.
기획재정위원회(위원장 조경태)에서는 이른바 ‘서별관회의’ 문건의 실체와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 박탈 문제를 두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야권의 공세에 진땀을 흘렸다.
발단은 AIIB 부총재 선임을 두고 유 부총리가 지난 기재위 회의에서 “홍기택 부총재가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고 말한 것을 송영길 더민주 의원이 문제 삼으면서다.
송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지난 2월 기재부가 ‘AIIB 부총재’ 선임이 정부의 성과라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내보이며 “부총리가 상임위를 능멸했다. 이런 뻔한 거짓말은 용납이 안된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같은당 김종민 의원은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을 논의한 서별관회의 문건 관련 “(유 부총리가) 지난 회의에선 기재부에 회의 문건이 없다 했는데, 최근 제가 부처에 자료요청을 하니 ‘여러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며 “부총리 말에 신뢰가 안 생겨 결산심사도 할 수 없다”고 해명을 촉구했다.
이들 외에도 박영선, 박광온, 김현미, 윤호중, 김부겸 의원 등이 유 부총리를 향한 공세를 거듭하자, 이현재 새누리당 간사는 “오늘은 결산 중심으로 회의가 운영되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새누리당 소속 조경태 위원장은 지난 회의 속기록을 직접 확인하며 중재에 나섰지만, 야당 의원들은 유 부총리의 해명을 거듭 촉구했다.
결국 여야 간사단 논의 끝에 유 부총리가 서별관회의 문건의 유무와 AIIB 총재직 선임과정에 대한 정부 해명을 성실히 답변하는 것을 전제로 겨우 결산심사가 시작됐다.
유 부총리는 AIIB 부총재직 선임 건에 대해선 “범정부적으로 한국 사람을 받아달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사태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답답하고 유감스럽다”라고 말했고, 서별관회의 문건에 대해서도 “분명한 것은 저희(기재부는) 문건을 갖고 있지 않고 저희가 작성한 것도 아니다”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위원장 유성엽)도 교육부·문체부 등의 결산은 뒤로 한채 파행을 빚었다. 이날 교문위 파행은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불출석 문제가 화근이 됐다.
도종환 더민주 간사는 나 기획관이 대기발령 조치된 것과 관련해 "당장 직위해제 조치해야 하고 장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야 의사일정을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성엽 위원장이 이준식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에게 나 기획관을 비롯해 대변인, 대외협력담당관, 감사관 등의 회의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 부총리가 "나 기획관은 대기발령돼 고향인 마산에 내려가있다.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겠다"고 답해,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거세졌다. 노웅래 더민주 의원은 "(나향욱의) 막말보다 큰 문제는 장관의 태도"라며 이 부총리를 질타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나 기획관을 출석시키되 결산심사를 진행하자고 했으나, 논란은 계속 됐다. 결국 이 부총리가 나향욱 발언 파문에 대해 사과하면서 발언당시 참석자들을 오후에 당사자 출석을 약속하면서 갈등이 봉합됐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돼 부처별 결산 보고조차 못한 채 오전 회의는 정회됐다.
정무위(위원장 이진복)에서도 정부를 향한 야권의 ‘뭇매’가 이어졌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 등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 일탈로 본다"고 말해 논란을 야기했다.
민병두 더민주 의원은 "잇단 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이 대통령 임기 말 레임덕이냐, 3년 동안 공직기관 해이가 누적된 결과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민 의원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백화점 쇼핑사건'과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의 '천황(일왕)폐하 만세' 발언 등을 예로 들었다.
민 의원은 "장관급, 고위직 공무원, 국책연구원의 잇따른 이런 발언 자체가 지금 공직 기강이 크게 해이해졌다는 것"이라며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 실장은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문제와 관련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공직기강 문제에 대해 총리께 보고드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