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나이젤 패라지 영국 독립당 당수가 현지시간 4일 사임을 발표했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함께 영국의 반이민 정서를 주도하며 영국을 유럽연합(EU) 탈퇴로 이끈 나이젤 패라지는 브렉시트 캠프가 승리한 만큼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사임으로 영국 정계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됐다. 집권당인 보수당에서는 카메론 총리가 사임을 발표한 뒤 차기 당대표 찾기에 바쁘고 제1야당인 노동당에서도 제레미 코빈의 사퇴를 둘러싸고 내전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 3대 정당인 독립당 당수마저 사임을 발표하면서 독립당의 미래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나이젤 패라지는 사실상 혼자서 독립당을 영국 3대 정당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06년 당대표에 오른 뒤 기득권 정당에 반기를 들며 막말과 친근감을 내세워 인기를 얻었다. 패라지의 인기를 등에 업고 독립당은 작년 총선에서 전국 득표율 12.6%를 얻기도 했다. 당시 패라지는 7선에 도전했으나 무명의 보수당 의원에게 패배해 사임을 발표했다가 며칠 뒤 뒤집은 바 있다.
패라지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함께 탈퇴 캠프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EU 탈퇴에 표를 던지도록 유도했다. 캠페인 막판에는 포스터에 시리아 난민을 등장시켜 이민자 혐오주의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영국의 EU 탈퇴 결정은 독립당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독립당은 EU로부터 영국을 되찾자는 목적에서 출범했다는 것이다. 이후 패라지의 인기로 영국 3대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등 급속히 성장하며 EU 탈퇴 국민투표를 정치적 아젠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 독립당의 핵심 목표가 달성되었고 존재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당수 마저 잃으면서 독립당은 위기에 처했다.
켄트대학교의 매튜 굿윈 정치학 교수이자 유로회의론자는 영국이 EU와의 협상에서 국민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독립당 같은 정당은 분명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독립당 지지율을 가장 크게 뒷받침하는 리더가 사라졌을 때에도 당이 정치권에서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패라지는 현지시간 4일 기자회견에서 "할 일을 다했다. 영국을 EU로부터 되찾았으니 이제 나의 삶도 되찾겠다"며 사임 발표를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향후 EU 탈퇴 협상팀에서 역할을 맡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 3대 정당 대표 모두 물갈이?
한편 브렉시트 저주에 걸린 듯 영국 주요 정당 대표들은 6월 23일 국민투표 이후 전부 사임을 발표했거나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이후 집권당인 보수당 소속의 카메론 영국 총리는 후임자가 선출되면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였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돌연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해 충격을 던졌다.
존슨을 제외한 다섯 명의 후보가 경선 레이스를 시작한 가운데 현지시간 4일 안드레아 리드섬 에너지 장관은 EU와의 협상을 가능한 조속히 시작하겠다고 밝히며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주장을 내놓았다.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을 비롯한 네 명의 후보들은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 전까지 영국의 입장 명확히 정한 뒤 협상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노동당에서는 제레미 코빈 당대표는 잔류를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당내 의원들로부터 높은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예비 내각 의원들이 코빈의 탈퇴를 요구하며 줄줄이 사퇴했고 당내 불신임 투표는 과반수를 훨씬 넘는 득표수로 가결됐다. 그러나 제레미 코빈 대표는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중도 좌파에 속하는 안젤라 이글 의원은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