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최근 발간한 “대성동고분군 -70호분 주곽·95호분-” 발굴보고서의 부록에 실린 이선주연구원(일본 쿄토조형예술대학 역사유산연구센터)의 ‘대성동88호분 출토 나전 유사 유물 복원 시도’ 글에서 나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조사된 대성동고분 88호분의 칠유기물의 현장사진에서 나전과 유사한 조개파편들이 확인되어 복원을 시도하게 되었다. 당시 이 조개파편들은 넓게 펼쳐진 옻칠 도막편 내 2곳에서 밀집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당시 발굴조사자는 88호분이 조개무지(貝塚)을 파고 만들어졌기에, 나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버려진 조개의 파편으로 생각했다. 또한 도굴 등으로 인해 조개편들이 너무 심하게 부식되어 수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중국 5세기 전반의 북연(北燕) 풍소불묘(馮素弗墓) 제1호묘(415년)에서 출토된 골상감사각칠합(骨象嵌四角漆盒, 옻칠 위에 뼈 상감으로 장식한 장방형의 상자)은 칠함 뚜껑 표면에 가록 0.5mm, 세로 1cm의 마름모꼴로 뼈를 가공하여 감입한 것으로 표면이 흰색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이유물들을 토대로 대성동 88호분의 나전을 복원 제작했다. 그 결과, 이들과 비슷하게 가공 및 형태가 만들어져 나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나전이라면, 이는 고려 나전 제작 기술이 700년 이상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88호분에서 같이 출토된 중국제 유물의 사례로 보아 나전 추정품이 중국 동북지방에서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가야 자체 제작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향후 발굴 및 출토유물 분석에 신중을 기하여 비슷한 사례를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나전은 야광 조개와 전복 조개 등의 껍질을 무늬대로 잘라 나무, 칠기 등에 붙이거나 끼워 넣는 장식기법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당나라로 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시대에 나전 기법이 발달해 도자기 공예와 더불어 대표적인 공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