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 ‘도자기의 낙원’ 삼보촌 촌장 리젠선

2016-07-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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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젠선은 도자기를 구울 때 땔감으로 불을 때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한다. 유약을 바를 때 더욱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고, 도자기 결에서 촉촉함과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배어들기 때문이다. [사진=인민화보 궈징(郭晶) 기자]


인민화보 장하오(張浩) 기자 =중국 장시(江西)성 징더전(景德鎭)시 동남쪽에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마을이 하나 있다. ‘무릉도원’이라 불릴 법한 이곳은 ‘삼보촌(三寶村)’이라 불리는 도예 마을이다. 삼보촌에는 여름이면 낫으로 벼를 베고 겨울이면 오래된 털 모자를 즐겨 쓰는 한 남자가 살고있다. 바로 삼보 국제도예촌의 촌장이자 도예가인 리젠선(李見深) 씨다. 그가 운영하는 삼보촌은 세계 도예가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옛 숨결이 숨쉬는 국제도예촌
1998년 조성된 삼보 국제도예촌은 지금도 중국 전역은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벨기에, 한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유명 도예가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국내외에서 초청된 수 백명의 도예가들이 창작과 교류 활동을 펼치고 매달 작품전도 열린다. 삼보촌의 방명록과 담벼락, 문짝 등에는 여러 나라 언어로 된 감성 가득한 글귀가 남겨져 있다. 이 모든 것은 리젠선의 유토피아적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삼보 국제도예촌은 삼보 도예연수원이라고도 불린다. 리젠선을 중심으로 징더전의 명예시민이자 유네스코 국제도예협회 부위원장을 지낸 미국인 도예가 웨인 힉비, 징더전의 공예미술 대가 류위안장(劉遠長), 징더전 도자기전문대학 총장을 지낸 친시린(秦錫麟) 등이 발기인으로 일을 추진하기 시작해 징더전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성되었다.

1700여 년에 걸친 도자기 역사를 지닌 징더전은 역사상 가장 우수한 도자기 명인들이 모인 곳이다. 북송 말기와 원나라 초기 전란을 피해 징더전으로 이주한 수많은 수공업자들의 기술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발전해 왔다. 중국이 ‘세계 도자기의 중심’이라면 징더전은 ‘중국 도자기의 중심’이다. 세계 각지의 도자기 명인들은 ‘도자기 성지 순례’를 위해 삼보촌을 방문하기도 한다.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건 쉬워도 오래된 마을을 복원하는 건 어렵죠.” 리젠선의 말이다. 그는 1998년 징더선 삼보촌에 농가를 몇 채 매입하고 중고시장에서 귀한 도자기를 사들여 도예촌을 세웠다. 삼보촌은 징더전에서 10km가량 떨어져 있다. 설립 초기 인적도 드물었고 관심도 별로 받지못했다. 하지만 천년의 역사를 지닌 가마터이자 송나라 때부터 도자기를 구워왔던 유서 깊은 고장이었기에 삼보 국제도예촌을 조성할 당시부터 리젠선은 ‘역사의 재활용’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풍수가 좋은 지역이고 선조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옛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하천과 개울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

리젠선은 삼보촌을 설계할 때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마을에 들어설 식당 위치를 정할 때는 선조들의 방식대로 하고 싶다며 나무 막대기로 땅 위에 스케치를 했다. 하지만 다음날 청소 아주머니가 실수로 스케치를 지워버리자 그는 무척이나 화를 냈다.

리젠선의 눈에 삼보촌에는 예술품이 아닌 것이 없다. 그의 손길을 거친 모든 것들은 작은 잔이든 큰 작품이든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도자기 제작은 삼보촌의 일상이자 그에게도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작업이다.

“이곳은 아주 조용하지만 바깥 세상과 단절되지는 않았습니다.” 벨기에 출신 도예가 호이가 말했다. 해외의 많은 도예가들이 삼보촌을 찾아오면서 징더전의 모습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보 국제도예촌에 진열된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사진=인민화보 장하오(張浩) 기자]


예술가들의 보금자리

주장(九江) 출신인 리젠선은 1978년 같은 장시(江西)성에 있는 징더전으로 옮겨 왔다. 그 후 징더전 도자기전문대학에서 수학하며 중국의 전통 도자기 기법에 대해 연구했다. 그럼에도 도자기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마음 먹고 징더전 도자기전문대학에 다시 입학해 석사 과정을 밟았다.

삼보 국제도예촌을 조성할 때 그는 예술가들이 2~3개월 간 도예촌에 머무르며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입주 아티스트’ 개념을 적용했다. 이 기간 동안 예술가들은 제토, 성형, 정형, 시유 등 전통적인 도자기 제작 공정을 체험할 수 있고 가마터도 견학하면서 징더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작품도 완성할 수 있다.

도자기 ‘자(瓷)’와 자기장의 ‘자(磁)’는 발음이 같다. 도자기의 마을인 징더전은 큰 자기장처럼 리젠선을 비롯해 수많은 도자기 명인들을 끌어들였다. 징더전은 이들에게 진정한 가마의 박동을 느끼고 도예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리젠선은 이렇게 말한다. “삼보촌처럼 예술을 테마로 한 공간은 사회와 학교를 이어주는 완충 지대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쉴 수 있는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창의력을 재충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특히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적합하죠.”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징더전과 도자기는 구시대적인 것이고 ‘현대적’, ‘글로벌’ 등의 단어와는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징더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전세계에서 이같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천년 넘게 예술을 이어오고 있는 징더전은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이다. 징더전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삼보 국제도예촌 미술관 전경[사진=인민화보 궈징(郭晶) 기자]


전통을 이어가는 삶

리젠선은 다방면의 지식을 두루 갖췄다. 그는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 후 서양 사조의 예술가들을 접했고 1990년대에는 미국 뉴욕주에 있는 알프레드 대학의 뉴욕 스테이트칼리지에서 도예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에게 도자기는 인류가 최초로 행한 수공업을 기록할 수 있고, 영구적인 특성을 띠는 존재다. 그는 도자기가 지닌 ‘불확실성’의 매력에도 푹 빠져있다. 모든 기술은 가마 속의 불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예술품이 탄생한다. 그는 “가마불은 우리를 울리기도, 웃기기도, 발을 동동 구르게도 만드는 존재”라고 말했다.

한 외국 예술가는 리젠선의 삼보촌 운영이 요리를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면서 리젠선의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리젠선도 그의 비유에 동의했다. 그는 좋은 예술은 맛있는 요리처럼 보기도 좋고 맛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이 만든 예술품이 모두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

전통적 방식의 생활을 찾는 사람들에게 삼보촌은 그야말로 ‘목가적인 생활’의 축소판이다. 이곳은 그 자체로도 만질 수 있는 예술이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삼보촌의 입주자는 도예가뿐이었지만 지금은 화가, 시인, 사진작가 등 다양한 ‘마을 주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매년 여름이 되면 리젠선은 영락없는 농민의 모습으로 벼를 벤다. 늘 많은 시간을 내어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다. 일년 동안 키운 벼를 거둬 밥을 지어먹는 그는 “징더전의 도자기는 농민들이 농한기에 만든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런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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