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역대 한국무역협회 회장 가운데는 국무총리, 경제기획원 장관에 오르면서 잔여임기를 채우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한국 현대 경제사를 빛낸 출중한 인물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박충훈 17대 한국무역협회(이하 무협) 회장도 그중 하나다. 박 회장은 국무총리로 부임하면서 공석이 된 잔여임기를 두 명의 회장이 채웠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한 김원기 회장(1980년 9월~ 1981년 5월)과 국무총리를 지낸 유창순 회장(1981년 6월~1982년 1월) 회장이다. 그러나 김 회장과 유 회장도 각각 8개월, 7개월의 짧은 기간만을 채운 뒤 공직 복귀 등의 이유로 물러났다.
그 뒤를 남덕우 회장이 취임해 18~20대 회장(1983년 10월~1992년 2월)을 지냈다. 제4공화국 재무부 장관과 대통령 경제특보, 제5공화국 국무총리를 역임한 남 회장은 7년 4개월의 재임 기간 동안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를 건립했으며, 1986년 우리나라 최초로 무역흑자를 시현하는 등 협회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이활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무협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남 회장에 이어 박용학 대농그룹 회장이 21대 회장(1991년 2월~1994년 2월)에 취임했다. 박 회장은 무역업계 출신 무협 회장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임기간 동안 박 회장은 중국 베이징 지부를 설립했으며, 무역업무 자동화를 위한 한국무역정보통신(KOTIS)을 설립해 ‘서류없는 무역업무’의 시작을 알렸다. 이 회사는 이후 KTNET으로 사명을 바꿨다.
22~23대 회장(1994년2월~1099년 2월)을 지낸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5년간 재임하면서 1995년 연간 수출 1000억달러를 달성하고 한국무역홍보센터를 발족했으며 국제무역연수원(현 무역아카데미)을 개원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급변하기 시작한 무역환경 속에서 수출입 통관 전자문서교환(EDI)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무역인프라 구축과 회원서비스에 주력했으며, 철저한 사전 준비로 아셈(ASEM) 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구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물려받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23~25대 회장(1999년 2월~2006년 2월)을 지냈다. 재임 기간 동안 무역인 양성을 역점사업으로 설정하고 무역아카데미 확대 개편을 실시했다. 2000년 10월에는 ASEM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무역연구소(현 국제무역연구원) 개소 등 무역활성화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전자무역추진센터 사무국 설치를 통해 전자무역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26대 회장에 오른 이희범 회장(2006년 2월~2009년 2월)은 무협 창립 60주년을 맞아 신경영전략 ‘New KITA Plan’을 수립, 협회와 회원사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데 힘썼다. 이 회장은 현장지원서비스 강화와 정보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우리나라가 2006년 수출 3000억 달러에 이어 2008년 수출 4000억 달러를 돌파하는데 기여했다.
27대 회장을 맡은 사공일 회장(2009년 2월~2012년 2월)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출이 위기 국면에 처했던 2009년 취임 이후 무역 애로 해결사를 자임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과 자유무역협정(FTA) 민간대책위원장으로 활약하며 세계 최대시장인 유럽연합(EU) 및 미국과의 FTA 체결·비준 통과에 기여했다.
사공 회장의 뒤를 이어 28대 회장으로 일한 한덕수 회장(2012년 2월~2015년 2월)은 한·미 FTA의 차질없는 이행과 무역업계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수십 차례 통상산업협력포럼을 개최하는 등 한국이 4년 연속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한·중 FTA 타결과 무협 최초의 소비자 판매(B2C) 쇼핑몰인 'Kmall24'를 개설, 코엑스몰의 리뉴얼 오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