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천 최초 천주교 성당, 답동성당

2016-06-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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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설립, 사적 제287호 지정, 근대 건축 양식의 묘미

아주경제 박흥서 기자 =1886년 한국과 프랑스간 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조선에서의 선교가 가능해지자 파리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에서 조선에 신부를 파견했다.

1889년 7월 1일 페낭신학교에 있던 빌렘(Wilhelm,J.) 신부가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답동성당(당시 제물포성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비록 임시로 예배를 드릴 공간을 마련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로부터 1주일 후 84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미사를 봉헌했다.

답동성당은 1889년 설립됐으나 성당이 건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빌렘 신부가 답동 언덕 일대의 땅을 기증 받아 1890년 정초식을 거행했고, 제2대 르비엘(Leviel,E) 신부가 성당 건립 비용을 마련해 경리부 건물 1동을 건립하면서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다.

1894년 코스트(Coste,E.J.G)와 샤르즈뵈프(Chargebeouf) 신부가 성당의 기초 설계도를 그리고 1895년 8월 공사를 착수해 1897년 7월 완공했다.

당시 종탑은 교회의 상징물이었으나 종이 설치된 것은 성당이 완공된 3년 뒤인 1900년의 일이었다.

신도가 급격히 증가하자 제4대 신부인 드뇌(Deneux,E) 신부는 성당 증축 공사를 시행해 4년 2개월 만인 1937년 6월 완공했다.

1937년 축성된 답동성당[1]


그 후에도 몇 번의 개축공사가 있었으나 비교적 옛 모습이 현재까지 보존돼 왔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시 관계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인천 답동성당을 방문해 근대 건축 양식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인천 여행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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