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0시께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인근 주차장 앞.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공 김군(19)의 시신이 놓인 관과 영정이 운구차량에 실리자 김군의 어머니가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했다.
그동안 감정을 억누르던 모습이 역력해 보였던 김군의 아버지도 연신 피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통곡했다.
이날은 지난달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군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고인이 숨진 지 무려 12일 만이다.
발인 당일 오전 9시 50분께 일찍이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 지하 2층 203호 분향소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었지만, 숨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엄숙했다.
입구에 놓인 수십여 개의 근조화환만이 덩그러니 놓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 중 은성PSD 노동조합과 4·16 가족협의회에서 보낸 것들도 눈에 띄었다.
김군의 영정은 개인정보를 위해 검은색 띠로 얼굴 일부분이 가려져 있었다. 유가족 4~5명과 김군의 친구들 10여 명만이 영정 앞에 모여앉아 슬퍼했다.
유가족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인터뷰를 거부했고, 분향소 입구에는 '기자 및 시민 여러분, 유가족의 얼굴을 촬영해 온라인 SNS에 절대 올리지 마세요. 저희에게 또 다른 큰 상처가 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도 기자들이 계속 머물러 있자 검은색 상복을 입은 유가족 한 분이 기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자 분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오늘만큼은 취재를 자제해 달라"며 연신 호소했다.
그는 "그동안 일반인으로서 고인의 사망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됐고, 이로 인해 추모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며 "가족장으로 치른 이유도 이날 만큼은 고인을 잘 보내고 싶다"고 말을 이었다.
취재진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유가족들에게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후 오전 10시 15분께 운구차량은 장지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