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이성과 논리는 필요할 때만 작동하는 걸까. '운빨로맨스'가 억지스런 캐릭터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고 있다.
2일 오후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에서는 제수호(류준열 분)가 심보늬(황정음 분)가 시한부란 오해를 풀고 새롭게 보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이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캐릭터들이 본래 설정에서 벗어났다. 심보늬의 막무가내 같은 태도부터 문제였다. 미신을 맹신하는 보늬는 혼수 상태인 동생을 살리기 위해선 호랑이띠 남자와 자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멀쩡히 일하던 아르바이트를 팽개치고 호랑이띠 남자가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설정부터 억지스러웠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쉽게 설치할 수 있는 데이트 어플만 해도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굳이 직장에서 호랑이띠 남자를 찾겠다고 회사 경비원에게까지 나이를 물어 보고 다니는 건 미신을 맹신하는 사람이 아닌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까지 보였다.
잠시 일을 함께하게 된 제제팩토리의 CEO 제수호가 호랑이띠라는 걸 알고 계약연애를 제안, 첫 만남부터 그를 호텔로 불러내는 것 역시 억지스러웠다. 애초에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가 아니라면 하룻밤을 보내게 되기까지 쌓아야 할 감정과 단계가 있을진데 "쿠폰에 당첨됐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수호를 호텔 방까지 끌고가는 보늬를 평범한 2030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제수호가 자주 기침이나 딸꾹질을 한다든가 청심환을 먹는 보늬를 보며 그를 시한부로 오해하는 과정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물이 오해를 해도 어색할 판에 논리적인 사고와 정확한 판단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천재 제수호가 그런 오해를 하니 스토리에 몰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심보늬가 자꾸 맹한 태도를 보인다거나 수호가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까칠하게 구는 걸 보고 있으면 제작진이 '미신을 믿는 것을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것'으로,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게 예의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여기에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건욱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IM 한국 지사장 한설희(이청아 분)가 자신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 건욱이 이미 고사한 프로젝트 제안서를 들고 제제팩토리를 찾아 제수호와 딜을 하는 과정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앞서 '운빨로맨스'에서는 수호가 인터뷰를 거절하자 제제팩토리에 몰래 들어와 억지로 인터뷰를 진행하려다 끌려나가는 기자의 이야기가 전파를 탄 바 있다. 기자에 이어 스포츠 매니지먼트 종사자까지 '운빨로맨스'는 스토리 전개를 위해 직업인들에게서 윤리 의식을 쉽게 빼앗는다.
앞서 제수호는 건욱이 둘 사이를 오해할까 걱정하는 보늬에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종족 번식을 목적으로 한 암컷과 수컷의 역할로 단정짓는 것, 이걸 동물 세계에선 발정이라고 한다. 물론 인간도 동물이지만 진화를 했다. 이성이란 걸 탑재했단 뜻이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집에서 밖으로 나가면 손님이라고 생각하겠지. 남자든 여자든 간에"라고 충고한 바 있다. 몇 가지 허술한 단서들로 그 사람이 시한부인 것으로 착각하거나 자신이 잠시나마 몸 담고 있는 회사 대표를 꼬시기 위해 데이트 첫 날부터 호텔에서 슬리브리스 차림으로 유혹하는 게 '운빨로맨스'의 상식이고 논리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