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배우가 기억하는 작품 속 최고의 명장면은 무엇일까? 배우의 입장, 관객의 입장에서 고른 명장면을 씹고, 뜯고, 맛본다. ‘별별 명장면’은 배우가 기억하는 장면 속 특별한 에피소드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다. 29번째 타자는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제작 모호필름 용필름·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주인공 김민희다.
6월 1일 개봉한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김민희는 사연을 감춘 귀족 아가씨 히데코 역을 맡았다. 히데코는 주변 인물들과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을 닫아버린 인물. 김민희는 아이처럼 사랑스럽고, 의뭉스러우며, 음산한 히데코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김민희가 언급한 이 갈아주는 장면은 숙희와 히데코의 아슬아슬한 성적 긴장감을 포착한 장면이기도 하다. 아이같이 천진한 얼굴을 한 히데코는 목욕을 하던 중, 뾰족한 이가 입안을 찌른다며 투정을 부린다. 이에 숙희는 손가락 골무를 끼고 히데코의 이를 갈아주며 그를 돌본다. 이 과정에서 숙희는 히데코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히데코 역시 숙희를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장면의 경우 시나리오에서 본 것보다 영상으로 본 것이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미묘한 감정들은 텍스트로 다 와 닿지는 않잖아요. 복합적인 감정이나 눈빛, 기류 같은 건 설명할 수 없었죠. 영상으로 봤을 때 그 긴장감이 다 전달되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숙희와 히데코의 미묘하고 예민한 감정선. 여성 간에 벌어지는 신경전은 사랑의 찰나와도 같았다. 김민희는 히데코의 감정, 히데코의 사랑에 대해 “겹겹이 쌓이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히데코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차가운 물새 같다고 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억압을 받아 뒤틀린 인물이죠. 그런 인물이 여러 감정이 생기고 겹겹이 쌓이다가 종국에는 폭발한 거로 생각해요. 왜, 숙희를 두고 히데코가 그런 말을 하잖아요. ‘나를 망치러온 구원자, 나의 동무 숙희’라고요. 그게 감정의 변화고 그런 게 쌓여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히데코가 선택한 거고, 해피엔딩으로 두 여자가 남자들을 뭉개고 사랑을 이뤄내는 거잖아요. 통쾌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