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산업 구조조정에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정부는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대규모 부실을 막기 위한 자금 대책 마련에 고민 중이다.
이와 관련, 박근혜 정부는 ‘한국형 양적완화’를 제시했다. ‘양적완화’는 국가 경제가 비상상황에 몰렸을 때 사용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행사해서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부족한 돈을 새 돈을 찍어 메운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직후부터 양적완화를 실시하거나 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8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최대 1조7500억달러(QE1) 또는 매월 850억달러(QE3)를 공급해 장단기 국채와 공사채, 주택담보대출증권(MBS)를 매입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양적완화는 국채 매입을 주력으로 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양적완화다.
반면, ‘한국형 양적완화’는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매입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보인다.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해결에 필요한 자금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한은)이 ‘새로 발행한 돈’으로 조달하자는 것이다.
이런 일을 추진할 국책 금융기관들이며, 기업 구조조정 부문에서는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다. 두 은행은 부실기업들의 총부채 가운데 60% 정도를 빌려줬다. 기업들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국책은행들은 채권자로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 한계기업을 빠르고 신속히 정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한국형 양적완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20대 국회에서 한국은행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현행법 아래에서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하면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과 함께 국가채무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상 한은이 이들 증권과 채권을 인수하려면 정부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럴 경우 정부의 빚보증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따라서 법을 고쳐 한은이 직접 이를 인수하게 하자는 것이다.
강봉균 새누리당 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미국이나 일본은 돈을 늘리면서 시중에 자금을 그냥 풍부하게 만드는 양적완화를 했지만, 한국판 양적완화는 우리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데 분명한 목표를 두고 한은의 지원을 받자는 것”이라면서 “중앙은행이 이제는 인플레이션만 막는 역할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처럼 경제가 가라앉으면 그것을 일으키고 금융시장에 돈이 막힌 곳이 있으면 뚫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대 여론 강해, 통상 이슈 확대 우려도 제기
강 전 위원장은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이 한국형 양적완화의 목적임을 분명히 했다. 단순 경기부양이 아니라 가계부채 구조개선과 기업 구조조정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기업에 대한 긴급 자금수혈 성격이 더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한국형 양적완화는 좀비기업의 수명을 더 연장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강한 비난을 받고 있다. 총선에서 패한 새누리당도 추진력이 예전만 못하고, 중앙은행인 한은 또한 초반에 비해 추진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과의 통상 이슈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정부가 주도한 반도체 빅딜로 탄생한 하이닉스반도체가 대규모 적자에 허덕일 때 정부는 채권단을 통해 신디케이트론을 발행을 지원하자 이를 정부의 직접 보조금이라고 판단한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상계관세 및 반도체 제소를 해 곤혹을 치룬바 있다. 이에 정부는 코트라(KOTRA)를 통해 한국형 양적완화를 비롯한 현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통상 분쟁 이슈에 해당될지 여부를 조사토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도 아직 이렇다하고 세부 내용이 확정된 것이 없다보니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해지지 또는 반대 어느 쪽도 말하기가 껄끄러운 상황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으려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활용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산업계도 굳이 부정적으로 보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