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감자바우'를 나쁜 뜻으로 쓰지 마세요!

2016-05-10 08:38
  • 글자크기 설정

칼럼니스트(문학박사)

강원도 평창군 미탄초·중학교의 한마음 등반대회.[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지난 4·13 총선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운동을 위해 정당, 후보자, 그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관련 특정 지역이나 성별을 비하·모욕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감자바우', `과메기', `홍어' 등 특정 지역을 비하·모욕하거나 '아몰랑녀'(비논리적이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여성) 등 특정 성별을 비하하는 경우다.

언젠가부터 생선 가운데 홍어는 호남인을, 과메기는 영남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 나아가 감자바위의 강원도말인 감자바우는 강원도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나 보다. 이외에도 강원도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는 '감자국'이 금지어가 되었다.
1956년 5·15 정부통령 선거결과 다른 지역과는 달리 강원도에서는 이승만 표가 90%, 이기붕표가 80%를 넘었다. 북한 접경지역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강원도는 ‘북풍’이나 ‘색깔론’ ‘안정론’ 등의 이유로 선거철이 다가와도 가만히 내버려둬도 무조건 여당을 찍는 성향이 있거나 그렇게 이용당한 부분이 있었나 보다. 여하튼 속설에는 5·15부정선거 이후 ‘감자바우’라는 말이 비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듯하다.

원래 강원도 감자바위라는 말은 우직스럽고 순박하고 순진한 뜻으로, 감자바위의 애칭이었다. 옛날부터 강원도는 태백산백이 있어서 산이 험하고 농지가 부족해서 산비탈을 개간하는 화전으로 수확하는 감자나 옥수수 외에 흰쌀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정선군 정선읍 사람들은 일부러 재넘어 평창군 미탄면에 딸들을 시집보냈다. 논이 있는 미탄면으로 시집온 정선 처녀들 가운데 한 분은 결혼 후 시가에 도착해 보니 곳간에 있는 장독들마다 흰쌀이 가득한 것을 보곤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가난한 집에서 고생하며 흰쌀밥 먹어본적없는 친정 엄마가 떠올라 눈물을 글썽였다고 전한다. 그만큼 쌀이 귀한 곳이고 감자가 흔한 곳이 강원도였나 보다.
 

강원도 정선군 생탄면 한농가의 외양간 겸 부엌안의 일소.[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강원발전연구원이 2007년에 실시한 강원도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대표적인 강원도 이미지로는 동막골과 사투리(37.2%), 산, 바다, 여행지(33.1%),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 농작물(16.5%), 추운날씨와 눈(5.8%), 탄광촌·군대(4.1%) 등이 꼽혔다. 강원도 사람 이미지는 동막골·사투리(93.1%)로 몸빼바지, 산골, 읍내, 고향내음, 농사, 노인, 촌, 구수함, 감자 등이 그 이유로 언급되었다. 한편, 강원도민일보가 2008년 실시한 강원도 이미지 구축 여론조사에서 '강원도 하면 생각나는 것' 가운데 1위는 감자(33.3%)였으며, 강원도 생산 먹거리 가운데 1위는 감자(26.8%)였다. 이런 이미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감자는 가짓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칠레·페루 등 남아메리카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된 듯하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1824년과 1825년 사이에 관북에서 처음 들어왔다고 되어 있다. 김창한(金昌漢)의 '원저보'(圓藷譜)에서는 1832년 영국의 상선이 전라북도 해안에서 약 1개월간 머물고 있을 때, 배에 타고 있던 선교사가 씨감자를 나누어주고 재배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하였다. 감자는 고구마와 달리 수십 년 사이에 각처에 보급되었으며, 양주·원주·철원 등지에서는 흉년에 이것으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황작물의 대명사가 된 식물이 감자는 흔히 쪄서 먹는데 산간지방에서는 주식으로 이용되었지만, 평지에서는 보조식량으로 이용한다. 같은 강원도라도 탄광이 있거나 논이 있는 곳에서 의외로 감자는 ‘도시락’의 주식이 아니라 부식으로 등장한다.

1970년대 강원도의 한 시골 탄광마을에 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집 초등학생 아이는 홀어머니 밑에서 그리 풍족한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끼니 해결도 어려운 세월이어서 가끔 ‘도시락’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 다 알던 정이 넘치던 시절에는 이런 사실을 말안해도 다 아는 것이었을까? 동네 같은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이의 점심 도시락과 함께 비료포대를 씻어서 말린 마대자루 같은 것에 찐감자 한두개씩 부식으로 넣어주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등교할 때 마대자루에는 항상 찐감자가 서너 개씩 들어 있었고, 아버지를 여윈 그 가난한 급우의 책상 속에는 언제나 찐감자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손에 주어지는 ‘우정’이 담긴 감자,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어머님들의 그런 ‘정’이 넘치고 넘치는 우리 강원도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강원도의 ‘감자바우’의 참뜻이 아닐까?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강원도, 산세가 험하지만 그래도 인정이 골짜기에 넘치는 강원도의 투박함, 우직함, 성실함 등을 나타나는 ‘감자바우’를 더 이상 욕되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비슷한 의미로서 ‘홍어’나 ‘과메기’ 등도 더 이상 지역 차별적인 이유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