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법 개정 필요성 언급으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가운데, 다수의 법률·정치 전문가들은 일부 조항의 위헌성을 이유로 ‘사후 보완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동법은 공직자를 비롯해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1회에 100만원(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과 무관)이 넘는 금품·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도록 했다.
28일 본지가 노영희 변호사(법무법인 천일)·손수호 변호사(법무법인 현재)·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차재원 부산 가톨릭대 교수·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나다 순) 등 5인의 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김영란법’과 내수를 연계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법 취지를 퇴색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민간영역 과도한 규제, 위헌 불가피”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민간영역에 대한 과잉 입법과 부정청탁 개념의 모호성 등 법률적 명확성·구체성 미비를 꼽았다.
노 변호사는 “‘김영란법’의 취지를 보면 당연히 필요한 법이지만, 규제 대상에 민간영역까지 포함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특히 법률의 불명확성으로 수범자들이 법을 지킬 수 없도록 기준이 애매한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손 변호사도 “민간영역에 공직자와 유사한 규제를 두는 것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김영란법’이 사적자치에 대한 과잉 입법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황 교수는 “부정 청탁행위 금지와 금품 수수행위 제한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라며 “이를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냐.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라고 개탄했다. 신 교수는 “문제점이 없는 법은 없다. 일단 시행한 뒤 보완해야 한다”고 전했고, 차 교수는 “언론인은 당분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농·축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화훼 등 농·축산물은 제외해야 한다”고 절충점을 제시했다.
◆“금액인상, 법 취지 퇴색”…검·경 인지수사↑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내수 위축을 이유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데 대해선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음식물·선물·경조사비 허용 금액 기준을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음식물·선물 3만원, 경조사비 5만원)보다 상향 조정(5만~7만원)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노 변호사는 “법 취지를 훼손하는 발언으로, 금액 자체가 높게 되면 ‘김영란법’이 아니더라도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 변호사도 “‘김영란법’의 문제점이 금액 자체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 법 취지가 후퇴할 우려가 크다”고 피력했다.
신 교수도 “‘김영란법’ 시행이 전체 내수경제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치겠느냐”고 반문했다. 황 교수는 “나도 사립학교 교원인데, (금액 인상을) 원치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 후 검찰과 경찰의 힘이 확대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차 교수는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검·경이 인지수사를 통해 선출된 권력인 특정 정당 의원들을 옭아맬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고, 손 변호사도 “검·경이 선별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할 경우 악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김영란법’은 법률 시행일인 9월28일 이전 위헌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의 시행령 제정안은 내달 중 입법예고를 통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