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영평정(寧平旌)을 아시나요?

2016-04-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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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문학박사)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평안리 '평안굴'.[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구전되는 민요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리랑'이 중심을 이룬다. 아리랑 특성화에 성공해 지난 2012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정선군과 인접한 이 곳의 '미탄 아리랑'도 거의 비슷한 가락으로 불린다. 사설도 서로 넘나든다. 예를 들면,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죽이/나지미(愛人) 마음만 같다면/병자년 흉년에도 봄살이 나네."에서 '‘한치'는 미탄면 평안2리에 있는 지명으로 회동리에서 육백마지기를 돌아 내려오는 곳에 위치한다. 여기서, ‘곤드레 딱죽’은 특산 나물로, 요즘 유명한 ‘곤드레 비빔밥’의 주인공이다. 곤드레가 나오는 사설은 정선아리랑의 보편적인 사설이 될 정도로 널리 불린다.

미탄 아리랑의 사설 가운데는 특이한 것도 적지 않다. “영월읍에는 덮개(德浦里를 덕개라 한 데서 유래한 지명)가 있어도 춥기만 하고요/평창 땅에는 약수(藥水里)가 있어도 사람만 죽는다.”나 “영평정(寧越·平昌·旌善) 삼읍(三邑)에 딸 주지 마라/삼베 치다가 잔더위 먹는다.”와 같이 주변 지역의 특색을 함께 노래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지명 가운데 영월과 정선을 이야기한 것은 그만큼 가깝다는 의미가 아닐까? 
실제로 지금도 미탄면 면사무소가 있는 창3리에는 평창읍뿐만이 아니라 정선읍과 영월읍으로 가는 버스가 드물지 않게 다닌다. 미탄면은 각각 고개 하나를 넘으면 10여 분만에 정선읍과 평창읍에 갈 수 있는 나름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다. 창3리의 한 부녀회원은 병원이 급하면 차를 몰고 바로 영월읍으로 간다고 한다. 그만큼 미탄에서는 거리상 뿐만아니라 심정적으로도 가까운 곳이 영월과 정선인 샘이다. 그래서 영평정이라고 하나보다.

영평정이라고 하는데 이걸 잘못해서 평정영, 정평영 등 순서를 바꾸어 말하면 큰일이 난다고 한다. ‘가나다’순도 아닌데 무슨 일인지 영월과 평창, 그리고 정선의 사람들은 그 순서대로 부른다. 최근에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선거구를 한데 묶어 태횡영평정이라고 한다. 굳이 영평정을 한데 묶고 또 이 순서대로 부르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누구는 인구수라고 하는데 1966년 이후로 들쑥날쑥해서 꼭 그런 것도 아닌듯하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1966년에는 영월군 12만4659명, 평창군 10만3519명, 정선군 10만2579명으로 영평정이 맞지만, 이후는 광산의 부침에 따라 순위가 자주 바뀐다. 2015년 4월 15일 기준으로도 영월군의 인구는 4만216명이고, 평창군은 4만3500명이며, 정선군은 3만9291명으로 평영정의 순서가 되니, 꼭 인구 때문이라고 하긴 어려울 듯 싶다.
 

봉산동계표석.[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얼마전 선거구획 이전에도 사람들은 “태백·영월·평창·정선의 심의대상 제외와 선거구 확정 중단을 요구한다”며 “폐광지역과 올림픽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서라도 선거구 분리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개최를 추진하고 확정된 것은 얼마 안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올림픽 때문이 아니라 모두 폐광지역이어서 오히려 공통점이 더 큰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친하게 지냈는데, 언젠가부터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서부터 서로 경쟁이 되고 삶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도 실제로는 거의 생활도 똑같고, 농촌을 기반으로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로 광산이 들어와 폐광이 되는 등 거의 비슷한 생애를 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불교태고종에서는 '영평정교구'라고 하고 천주교에서도 '영평정지구'라고 해서 이 세곳을 하나로 묶어 운영하고 있다. 지역신문가운데는 한국지역인터넷언론협회 회원사인 영평정인터넷뉴스(jypnews.co.kr)가 있을 정도다. 서울에 와 있는 유학생들을 비롯해서 각종 향우회나 체육회에서도 ‘영평정’ 출신들이 한데 모여 모임을 같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지라면 강원도는 영평정(영월, 평창, 정선), 경상도는 BYC(봉화, 영양, 청송), 전라도는 무진장(무주, 진안 , 장수)이라고 할 정도로 영월, 평창, 정선은 산골 오지 마을의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평창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길목인 멧둔재가 있는 미탄면 율치리에서 2005년에 개봉된 영화 '웰컴투동막골'이 촬영된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일 것이다.

지역 사람들도 영평정은 예로부터 산다삼읍(山多三邑: 산이 많은 세 개의 고장)이라 아직까지 전통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오지가 많이 있어 합쳐서 부른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세지역의 사투리도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영월군의 역사를 보면, 1457년(세종 3)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어 왔다. 1698년(숙종 24)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을미개편 때 군이 되었으며, 원주·평창·정선 등과 함께 충주부에 편입되었다가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에 다시 강원도로 복귀하게 되었다. 1915년에는 정선군 신동면 석항리가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상동면이 정선군 신동면 천포리 일부의 편입을 받아 읍으로 승격되었다.

평창군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에 목조(穆祖)의 비 효공왕후(孝恭王后)의 고향이었다는 이유로 다시 군으로 승격됐다. 1906년 10월 1일에는 강릉군의 대화(大和)·봉평(蓬坪)·진부(珍富) 등 3개 면이 편입되고, 신동면(新東面)은 정선군으로 이관되었다.

정선군 역사에 따르면 1906년 강릉군 임계면·도암면과 평창군 신동면이 정선에 편입되어 6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31년에 도암면이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1935년에 정선면 일부가 평창군 진부면에, 신동면 일부가 영월군 상동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신동면 천포리가 영월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평안굴안에 샘솟는 창리천 시원지.[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이런 역사를 보면 이 세 군데 산골오지마을인 영월, 평창, 정선 가운데 군이 아니라 도호부가 설치된, 영월이 당연히 으뜸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8도 밑에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이 병렬적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평창군이나 정선군 보다 상위의 지방행정구역이 영월에 설치되어 있었다. 아울러 단종 임금이 계셨던 것도 언제부턴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평창과 정선 가운데 효공왕후를 배출한 평창군 그리고 정선군의 순서로 영평정이 정해진 것은 아닐까?

결국 지금의 평창군 가운데 영동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는 대화봉평진부는 지금도 강릉이 생활중심지이며 과거에도 강릉의 일부였다. 그리고 영평정 문화권에 속하며 발전이 더디고 인구도 적은 미탄면을 비롯한 남부지역이 예전부터 평창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토의 균형 발전도 고려해서 강원도에 유치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그리고 평창군 가운데 발전이 가장 낙후되었다고 하는 미탄면 등 남부지역과 정선군 그리고 영월군 등에 우리가 관심을 갖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이야기의 차원이 많이 다르지만, 얼마전 발표된 평균수도세(1톤당)를 보면 서울시는 571원인데 비해, 정선군은 1450.5원, 평창군은 1215.1원, 영월군은 1085.6원으로 전국 최고 물값 1,2,3위를 차지한다고 하니 매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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